[주성하의 서울살이] 남과 북의 추석 풍경을 보며

28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열린 제31회 이산가족의 날 행사에서 참석자가 망배단에 헌화하고 있다.
28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열린 제31회 이산가족의 날 행사에서 참석자가 망배단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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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일은 추석이라 준비에 바쁘시겠죠. 차례상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그래도 형편껏 차려놓고 내일 하루만큼은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기 남쪽도 오늘부터 추석 연휴에 들어갑니다. 예전에는 보통 3일씩 쉬었는데, 올해는 어찌 된 영문인지 저의 회사도 나흘이나 쉬네요.

추석 때면 사람들은 모두 고향에 가서 추석 쇠느라 고속도로 기차 할 것 없이 꽉꽉 막힙니다. 그래도 남쪽은 이렇게 고향에 갈 수라도 있지만 북에선 고향이 멀면 갈 엄두도 못 내죠. 아직도 나진에서 평양까지 기차가 일주일씩 간다고 들었는데 1990년대 말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네요.

그럼에도 북에 있을 때는 추석을 쇠겠다고 꽤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죠. 워낙 모든 것이 귀하다 보니 일찌감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전에 저희 집에서도 추석이 오면 육류는 직전에 장마당에서 사와도 물고기는 오래 전부터 사서 말려두곤 했습니다. 냉동기가 없고, 있어봐야 전기도 없으니 물고기는 대개 처마 밑에 걸어두고 꼬들꼬들 말렸다가 당일 찜을 해서 차례상에 올립니다.

저도 예전에 추석 때 쓸 고기를 잡는다고 나가서 낚시질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는 왜 그리 잘도 잡히는지. 어머니가 그중에서 큰 고기만 골라서 “이 고기는 추석에 써야지”하고 처마에 매달았습니다. 추석이 보름도 넘게 남아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추석날 전날이면 떡을 치고, 음식을 만들고. 가마에서 증기에 쪄지는 물고기의 냄새는 왜 그리 코를 자극하던지. 제가 원래 해산물 너무 좋아하거든요. 추석 아침 일찍 밥을 해서 전날 저녁부터 준비한 각종 음식들을 큰 그릇에 담고 이고지고 산소에 올라가곤 했죠.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소중한 추억이 됐습니다.

여기도 추석 때가 되면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반찬을 만들고 지짐을 하고, 떡을 치고 하는 모습이 북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하지만 북에 비하면 여기는 모든 것이 풍족하니 추석에 먹을 음식재료를 준비하는데 그렇게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큰 상점에 가서 몇 시간 밀차를 끌고 다니면 고기도 있고, 물고기도 있고, 떡도 있고, 각종 과일도 풍부하고 아무튼 차례상 모든 준비가 몇 시간이면 한꺼번에 끝납니다. 한 달 전부터 추석 준비를 해야 했던 북한과는 너무 다르죠. 심지어 전화 한통이면 업체들이 차례상을 아예 제대로 차려가지고 차에 싣고 오기도 합니다. 물론 돈은 내야죠.

남한의 풍족함에 감탄은 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움은 남습니다. 추석이라는 것이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한 상점에서 한꺼번에 음식재료 다 사고 나니까 추석의 의미가 쇠퇴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이들 눈에 추석은 전날에 상점에서 잔뜩 사다가 때려먹는 날처럼 기억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추석에 농촌 고향집에 모이면 여자들은 부엌에서 지지고 볶고, 남자들은 모여서 화투나 치고 그런 일들이 보통인데, 이런 것이 뒤떨어진 문화라고 언론에서 추석이 올 때마다 지적하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이야 딱 북한과 닮았죠. 북한에서도 여자들이 음식하고 남자들은 기껏 잔심부름이나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하나 추석에 보면 가부장적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여기 남자들은 할 소리가 있습니다. 고향에 가느라 식구들을 태우고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씩 운전을 했고, 또 올라갈 때도 꽉 막힌 도로에서 졸음을 참으며 운전을 하니 북한엔 없는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에 비하면 북한 남자들은 그냥 날로 먹죠. 예전에는 내가 벌어왔잖아 하고 큰 소리라도 치겠지만 이제는 대개 여성들이 장마당에서 돈을 벌어오는 시대가 됐으니 그런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유교사상이 강한 북에서도 남편이 불편이요, 불필요한 낮 전등이고 집지키는 멍멍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시대가 시대니 만큼 북한의 남성들도 요즘엔 부엌에 들어가 도와주는 사람이 크게 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선진국 근처라도 가서 헤매려면 너무 멀었죠.

북에서 부부가 탈북해 온 사람들 여기 와서 이혼하는 경우 진짜 많습니다. 여자가 보기엔 여기 남자들 너무 잘해주는데 정작 남편은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처음엔 남편보고 “한국에 왔으니 당신도 좀 변해서 남들 절반이라도 따라가라”고 하소연하는데, 남편 보기엔 “이 여자가 어렵게 한국까지 데려 왔더니 사람이 확 달라졌네” 이러고 불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점점 부부싸움이 늘어나다 결국 갈라서는 거죠. 제 보기엔 남자가 변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자가 변한 가정은 잘 이혼하지 않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잘 해줍니다. 저도 10년 살면서 본 게 많아서 이제 북에 돌아가도 북쪽 여성들에게서 엄청난 인기를 받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엔 추석증후군이란 말이 있습니다. 추석 때 음식 하루 종일 지지고 볶고 준비하다보면 며칠 몸이 뻐근하고 고단하다는 말입니다. 여기는 북한과 비교하면 주방시설이 매우 현대적인데도 그러니 북한 여성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추석이 끝나서 음식 하느라 고생한 집사람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이번 추석 음식 준비하느라 당신 고생이 많았지” 요렇게 살뜰하게 한마디만 해보십시오. 아내가 정말 감동하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갑자기 변하면 “이 나그네 뭘 잘못 먹었나”하고 처음엔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몇 번 더 하면 정말 남편에게 잘해주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추석 잘 보내시고, 추석 끝난 뒤에는 제 말 꼭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