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을 북한에 대입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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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달 28일을 기점으로 남쪽에서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또는 발의자의 이름을 따서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엄청 파문이 큰 법안 하나가 정식으로 시행됐습니다.

얼핏 들으면 부정청탁이나 돈을 받는 일은 원래 안 되지 않나 이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사실 간단히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를 하면 원래 법의 처벌은 받았지만, 이 법은 애초에 그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만든 법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공무원, 교사, 언론인 등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한번 식사에 3만 원 이상, 선물은 5만 원 이상, 경조사비는 10만 원 이상 받지 못하게 규정했습니다. 이 법의 적용대상이 한국에 무려 400만 명이 됩니다.

한국돈 3만 원은 30달러 정도, 5만 원은 50달러, 10만 원은 100달러 정도 됩니다. 한 끼에 30달러씩이나 쓴다면 북에선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는 월급도 높고, 물가도 높아서 제가 일하는 서울 중심부 쪽에는 좀 고급 식당이면 30달러 넘습니다. 여기 가서 누구한테 한 끼 얻어먹으면 제가 범죄자가 됩니다.

이걸 소득격차가 최소 30배 정도 차이 나는 북한에 대입하면 여러분이 어느 고급식당에 가서 공무원이나 선생님, 언론인 이런 사람에게 북한 돈으로 7000~8000원짜리 밥을 산다거나, 1만2000원 이상의 선물을 한다거나, 잔칫집에 가서 2만5000원 이상 부조를 낸다거나 하면 법에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는 사람 사이도 봐주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법을 북한에 도입하면 큰 일이 날 겁니다. 평양의 좀 고급식당은 한 끼에 1달러가 아니라 10달러가 훌쩍 넘는데 거기 가서 힘 있는 사람에게 밥을 사면 안 됩니다. 그럼 평양 고급식당도 다 망하겠네요. 물론 서로 먹은 만큼 돈을 내면 액수에 상관없이 법에 저촉되진 않습니다만, 북한에서 간부가 누가 돈을 내고 먹습니까. 보통 졸업식 때 학부형들이 돈을 모아 선생님에게 몇 십만 원 어치의 선물을 주기도 하는데, 받으면 선생님이 범죄자가 됩니다. 그럼 북한 사회도 난리도 아니겠죠.

또 청탁을 하면서 제공하는 금품은 액수에 상관없이 범죄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간부나 보안원에게 “좀 봐주세요”하고 담배 한 가치를 건네도 뇌물로 간주하고,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 좀 잘 돌봐주세요” 하면서 밥 한 끼 사도 안 됩니다. 물론 현실에서 담배 한 가치, 밥 한 끼로 끝나는 일은 절대 없겠죠.

저도 기자라 김영란법 대상자가 돼서 이젠 아는 사람과 밥 한 끼 먹기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사실 저는 남쪽 기자 중에서 제일 밥값을 많이 쓰는 기자 중 한 명일지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얻어먹지만, 저는 취재로 만나는 사람들이 탈북자가 많으니까 늘 제가 밥을 사죠. 김영란법은 밥을 얻어먹는 사람뿐만 아니라 밥을 사주는 사람까지 처벌합니다.

남쪽에서 이렇게 엄격한 법을 도입한 이유는 부패를 없애 깨끗한 사회로 나가겠다는 의지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엔 정과 의리라며 봐주었던 문제도 이젠 짚고 넘어가겠다는 뜻입니다. 최근에도 검사나 판사 이런 사람들이 고등학교 친구가 사장이 돼 돈 많이 벌었다고 차도 받고, 주식도 받고, 공짜 여행도 가고 이런 것들이 드러나 법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북한이라면 “잘 나가는 친구가 좀 못나가는 친구 돌봐줄 수 있지 않겠냐” 이러면서 전혀 문제 삼지 않을 것도 여기는 문제가 됩니다. 친구가 검사가 아니라면 사장이 돈을 주겠습니까.

북한도 이런 법이 좀 도입돼야 합니다. 김정은이 작년 2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부패를 고쳐야 할 3대 악습 중의 하나로 규정하고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왜냐면 부패를 단속해야 할 사람들이야 말로 북한에서 가장 부패한 사람들인데, 큰 도둑에게 작은 도둑을 잡으라니요.

최근에 들어오는 탈북자 수백 명을 조사해보니 탈북자 80%가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직업으로 중앙당 간부, 두 번째로 법 기관 간부를 꼽았습니다. 반면 가장 못사는 직업으론 57%가 농민을, 22%가 노동자를 각각 선택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권력=돈입니다. 뭐 당연한 거 아니냐, 새삼스럽게 뭘 그러냐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북에 비하면 훨씬 더 청렴합니다.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 100명을 조사하니 90명이 뇌물 준 적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좀 놀랐는데, 뇌물 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북한에서 뇌물 줘본 적 없는 사람도 10명 중 한 명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나 싶은 게 중국 여행증 한번 받으려 해도 300∼1000달러의 뇌물을 줘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북에 살 때 뇌물 많이줬죠. 우스갯말로 북한에서 통용되는 뉴턴의 4법칙은 “고이면 움직인다” 아닙니까. 고이지 못하면 외지에 한발자국도 못 다닙니다.

이런 부패가 만연한 결과 북한의 소득격차는 한국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북한 최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90만 원, 그러니까 110달러 정도인데, 최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2만 원으로 격차가 45배나 됩니다. 한국은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차이가 5.4배이니까, 북한의 빈부격차는 한국에 비해 8배 이상 더 심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만들겠다고 70년 넘게 인민들을 내몰더니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가난할수록 부패가 심하게 되고, 부패가 심할수록 더 가난해지게 됩니다. 북한도 하루 빨리 이런 부패의 악순환을 끊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 전국에 별장을 세워놓고 부화방탕 사는, 부패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서 있는 김정은과 그의 수족들부터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