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8월에 울릉도와 독도에 간다는 말씀드리면서 다녀와서 그 소감을 말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그 이야기를 아직까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8월에 가려 했는데 함께 가려던 일행 중 한명의 일정이 늦어져서 9월 초, 추석 직전에 다녀왔습니다.
미국에서 여러분들도 이름을 들었을 유명 명문 대학에 다니는 동생들이 있는데 제가 독도에 가봤냐고 물어보니 못 가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졸업해서 미국에서 살지, 한국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인 이상 독도는 한번 가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냐, 나도 아직 못 가봤으니 방학에 집에 왔을 때 머리도 쉴 겸 독도에 가보자 이래서 떠난 길입니다.
독도에 가려면 먼저 울릉도에 가야하고, 울릉도로 가려면 남쪽의 동해 쪽에서 배가 세 곳에서 떠납니다. 하나는 강릉에서, 다른 하나는 강릉 조금 아래 묵호에서, 또 하나는 포항에서 떠납니다. 저희는 포항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떠났는데, 서울에서 포항까지 약 두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포항항에서 탄 배는 2400톤급 대형 여객선인데 900명을 태웁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진 217㎞인데 이 배로 세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이렇게 큰 배가 북에선 자동차도 내기 어려운 시속 70㎞로 바다를 가르며 가는데, 예전에 고깃배를 많이 타봤던 저는 소파 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다보며 참 감개무량했습니다. 이 배 속도는 여름에 북에서 낙지발이 나가는 전마선 속도의 열배 정도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갈 때에 파도 때문에 배가 흔들렸는데 저는 날바다를 많이 겪어봐서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울릉도에 도착해 강릉과 묵호 쪽에서는 파도가 세서 배가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참 파도 센 날에 왔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그런데 멀미가 없었던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떠날 때 멀미를 막는 약이라고 먹긴 했지만 예전엔 그게 소용이 없었거든요. 북에선 바다에 나가 며칠씩 있었지만 사람 몸이란 것이 참 요사스러워서 서울에 와서 몇 년 글을 쓰는 일을 했더니 나중에 버스를 타고 책만 내려다 봐도 멀미가 나더군요.
저희가 갈 때는 4월 세월호 침몰 여파로 사람들이 배를 타기 꺼려해서인지 탑승객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큰 배에도 정원에 맞게 구명조끼나 구명대가 다 구비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전에 제가 북에서 여름마다 낙지발이 나갈 때는 겁도 없이 날바다에 가랑잎 같은 쪽배를 타고 나가면서도 구명조끼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아마 북에선 많은 어부들이 구명조끼나 구명대도 없이 바다에 나갈 겁니다. 그러다 죽으면 죽지 이런 심정이죠.
그래서인지 해마다 낙지발이가 끝나면 어촌 마을마다 실종자가 몇 명씩 나옵니다. 무전기도 없고 하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도 없고, 파도가 센 다음날 배가 오지 않으면 죽었거니 할 뿐입니다. 시신도 못 찾고요. 그러나 며칠 뒤 기관고장 등으로 표류하다 기적적으로 나타나면 얼마나 환호하고 그럽니까. 저도 육지가 보이지 않는 날바다에서 밤에 배가 침몰되면서 바다에 빠져봤습니다. 하지만 하도 서너살 때부터 바다에 익숙된 몸이어서 그런지 다른 배가 와서 구조할 때까지 오랫동안 물에 떠 있을 수 있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바닷가에서 어린 저는 늘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 뒤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는 어떤 곳인지 몰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가 북에서 늘 바다를 바라보았던 곳과 정확히 같은 위도의 일본땅을 위성지도로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정말 그게 오랫동안 궁금했었거든요. 하지만 뭐 특별한 것은 없었고 황량한 해변과 해변가를 따라 포장도로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실망했습니다만 일단 그곳을 점찍어놓았습니다. 워낙 외진 곳이라 비행기타고 가서 다시 버스타고 가서 또 택시타고 가야 하는 길이지만 내 한번은 꼭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북에서 제가 바라보며 항상 궁금했었고 상상만 하던 그 해변에 서서 이번에는 반대로 다시 꿈에서도 다시 가고 싶은 고향 땅을 상상하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기분은 정말 묘할 것입니다. 그런 꿈은 서울에서 10년 넘게 품고 있었지만 늘 바쁘게 살다보니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람이 늘 품고 사는 꿈은 하나쯤 있어도 나쁠 것은 없지요.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일본에 갈 일이 있어 다녀왔고, 다음 달도 세미나 때문에 일본 갈 일이 있는데 이러저런 이유로 일본 지도를 다시 펴놓고 보다가 문뜩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과 똑같은 위도는 그 일본 해안이 맞지만 제가 서서 바라보던 방향은 거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얹어 보내던 그 수평선 너머로 직선을 그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뭡니까. 내가 바라보던 수평선 뒤에 정확히 울릉도와 독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울릉도와 독도에 가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외국도 아니고 맘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혼자 가긴 좀 그렇고, 방학 온 동생들에게 애국심과 휴식을 들먹이며 겸사겸사 울릉도행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울릉도 이야기를 하려 시작했는데 울릉도 도착하기 전에 벌써 오늘 방송 시간이 다 됐습니다. 늘 정치이야기만 하다가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적은 참 오랜만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진짜로 울릉도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자세히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누구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궁금해 하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방송에서 그 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 사람은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 사람이 간 울릉도의 이야기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