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최룡해가 김정은 특사로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혹 북한에 최룡해가 러시아에 가면 뭐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꿈 깨라 하고 싶습니다. 요새 한국 코미디프로에서 “아이고, 의미없다”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정말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를 봐도 2012년 8월에 장성택이 특사로 중국에 가서 습건평(시진핑)을 만났는데 뭐가 달라졌습니까. 작년 5월에도 최룡해가 특사로 중국에 갔지만 뭐가 달라졌을까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북중 관계는 1990년대 초반 한중 수교 이후 20년 만에 제일 악화됐습니다. 지난달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한꺼번에 한국에 왔지만 남북관계도 더 악화됐습니다.
실권도 별로 없는 최룡해가 또 특사라고 러시아에 가도 그가 뭘 바꾸겠습니까. 요즘 조연준, 황병서, 김경옥 같은 조직지도부파가 권력을 꽉 틀어쥐었는데 이 사람들은 외교경험이 없고, 또 국제무대에 나서길 꺼리는 사람들이라 결국 최룡해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나 봅니다. 최룡해 정도면 최현의 아들이고 또 인지도도 있으니 외부 활동에 적격인데 김영남이 많이 늙었으니 앞으로 최룡해는 얼굴마담 역으로 계속 활용될지 모르겠습니다.
러시아는 김정일도 2000년대에만 세 번이나 갔습니다. 저도 기억하지만 2001년 8월에 무려 24일이나 러시아에 가 있었는데 그때 북에서 “장군님이 인민들 잘 살게 하려고 머나먼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고” 얼마나 선전 많이 했습니까. 그런데 갔다 와서 뭐가 달라졌습니까. 김정일은 2002년 8월과 죽기 몇 달 전인 2011년 8월에도 기차를 타고 극동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가 전기를 좀 끌어오려는 것이었나 봅니다. 김정일이 고향인 하바로프스크의 인근에 부레이 발전소라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력발전소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거기 전기를 일부 북한에 보내도, 북한에서 지금 사용 가능한 전기량인 200만 KW 정도보다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가서 아무리 군침 뚝뚝 흘려도 방법이 없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더 나쁜 겁니다. 국제 관계에서 남의 것을 얻으려면 내 것도 내주어야 하는데, 북한은 자기들의 노선과 정책은 바뀔 줄 모르고, 거지처럼 자꾸 달라고만 하니 공짜 얻기 어디 쉽습니까. 최룡해가 이번에도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평양으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하는데 거기 가서 군침 흘리고 와봐야 중요한 것은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니깐요. 설사 무슨 약속을 하고 와도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별로 신용 있는 국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북한은 최악의 신용국가고요. 그러니 둘이 무슨 약속을 해봐야 그게 잘 지켜지겠습니까. 무슨 계약을 해도 돈이 들어와야 들어오는가 보다 하는 것이죠.
저번 달만 봐도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대형계약이 맺어졌는데, 내용인 즉은 모스토빅이란 러시아 회사가 무려 250억 달러를 투자해서 7200km에 이르는 북한 내 철길 중 절반인 3500km를 20년에 걸쳐 개보수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철도망 절반을 책임져준다니 이건 엄청난 계약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약이 맺어졌다고 북에서 선전하는데도 저는 여기서 콧방귀를 뀌었죠. 상대가 러시아인지라 두고 보자 싶었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한 열흘 전에 모스토빅의 올렉 쉬쇼프 사장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알고 보니 이 회사가 6월부터 직원 월급을 주지 못했고요, 회사 빚이 자기 자본금의 9배나 된답니다. 이런 파산 직전의 회사가 북한에 가서 철도망 절반 깔아준다고 큰소리 친 것이죠. 쉬쇼프 사장은 공금도 1000만 달러 이상 횡령한 것으로 밝혀져 감옥에 갈 것 같습니다. 북한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니까 그 곁에 달라붙은 사람 중엔 이런 사기꾼들이 많습니다. 민족의 태양이란 영화에서 “영걸이 영걸을 알아본다고”라는 대사가 있는데 사기꾼도 사기꾼을 알아보거든요.
저는 최룡해가 특사로 간다는 소식보다는 그가 탔던 특별기가 고장이 나서 평양으로 회항한 일이 더 눈길이 쏠리더군요. 우리 레이더에 최룡해 특별기가 뜬 것이 보였는데 중국 상공에 막 들어가려다 다시 순안공항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특사가 탄 특별기인데 큰 고장이 났나 봅니다. 비행기 안에서 최룡해가 “오늘이 내 제사날인가”하고 비지땀을 흘렸을 것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네요.
이번에 최룡해가 탄 비행기는 일류신 62기종으로 북에 딱 3대 있습니다. 낡은 기종이라 이미 사용한지 30년이 넘었는데 외국 같으면 이미 폐기됐을 고물입니다. 30년이 넘으면 국제 항공 기구가 비행을 금지시키는데, 심지어 중국도 작년에 고려항공 여객기 6대를 중국에 오지 말라고 운항 금지시켰습니다. 그거 만일 중국에 떨어지면 얼마나 골치 아프겠습니까.
그런 비행기를 김정은이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물론 김정은에게 이 비행기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고 몇 년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 간 최신기종이 있긴 합니다만 운항 가능거리가 3000㎞ 조금 넘어서 중국에나 타고 가지 6000㎞가 넘는 모스크바까진 못타고 갑니다.
예전에 김정일이 러시아 방문할 때 일주일 넘게 기차를 타고 갔는데 100년 전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바쁜 대통령들이 누가 기차를 타고 다닙니까. 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요. 여기선 김정일이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를 탄다고 분석하는데, 그럴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순 없지만 또 한편으로 북에서 모스크바까지 타고 갈 비행기가 마땅하지 않아서 그 고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북한이 특사 보낼 여객기도 변변치 않은 자신들의 처지를 빨리 깨닫고 과감하게 개혁을 하길 바랍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