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가 밝아 온지도 벌서 열흘이 지났네요. 지난 주말 친구들과 목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었거든요. 뭐 먹을까 의논하던 중 한 친구가 장어구이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하여 우리는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 근처에 있는 이름 있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키고 운동도 할 겸, 임진각으로 갔습니다.
차가운 임진강 강바람으로 인해 볼이 조금은 시렸지만도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고향으로 풍선을 날리던 곳이라 새록새록 추억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수많은 추억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고향, 엎어지면 손이 닿을 것만 같은 고향이지만 갈 수가 없는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으로 개성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철길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맞은편이 고향인 한 친구의 한숨 소리가 크게 들려옵니다. 개풍이 고향인 그는 집 근처에서 군복무 했던 남편을 따라 함북도 회령에서 살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곳 한국에 온 친구입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아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다고, 본인의 나이도 50이 넘었는데 아마 부모님들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고 동생들의 생사라도 알고 싶다고 하는 그의 말에 답 대신 한마디의 말도 없이 묵묵히 엄숙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습니다.
정초부터 아픈 상처를 건드릴 수 없어 저는 인차 화제를 바꾸어 평화누리공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새로 건설해 놓은 평화누리공원 뒤 쪽 주차장은 넓은 공간이라 운전 연습하기도 참 좋은 곳이기도 하거든요. 서로 서로 바꿔가며 운전기술도 발휘해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 조금 과하게 했던 점심도 소화시켰습니다.
열정의 땀을 식힐 겸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개성이 고향인 다른 한 친구가 문뜩 죽기 전에 고향에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무겁게 뗐습니다. 그 친구는 어머님과 함께 오빠 그리고 아들도 함께 이곳 한국에 온지 10년이 된 친구이기도 하고 몇 년 전에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친구이기도 합니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어머님은 눈을 감기 전에 고향에 두고 온 맏딸과 함께 고향을 무척 그리워했다고 하면서 본인도 고향에 가보기엔 이젠 틀린 것 같다고 하네요. 중국을 오가면서 외화벌이를 하던 신의주가 고향인 한 친구가 뜬금없이 비록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당시 본인은 부족한 것이 없이 나름대로 잘 살았다는 기억을 뜬금없이 더듬었습니다.
한 친구가 비꼬는 식으로 어떻게 잘 살 수 있었냐고 묻자 그 친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중국을 넘다 들며 외화벌이가 잘되었다고 하면서 빈부 격차로 인해 동네 사람들은 본인의 집에 와서 일을 시켜 달라고 했다고 말하네요. 그런데 무슨 검열만 제기 되면 보위부에 끌려가서 간첩 혐의로 고문을 받곤 했다고 합니다.
중앙당 집중 검열이 시작되던 어느 날 보위부에 있는 절친한 친구가 야밤에 갑자기 찾아 와서 시간이 없으니 빨리 피하라고 알려 주는 바람에 생각조차 해 볼 시간 없이 잠 옷 바람에 아내와 아이들을 뒤에 남겨 두고 그 밤으로 두만강을 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조금은 어려워 영국도 다녀왔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잘 적응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덧 붙였습니다.
한창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데 커피숍 텔레비전에서는 올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와 관련해 남한과 북한이 전화 연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잘 하면 이산가족 방문소리도 나오네요. 한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이러다가 우리도 고향에 가 볼 수 있지 않겠나하고 말합니다.
넘어지면 손이 닿을 것만 같은 내 고향 북한, 통일교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는 208km.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이건만 갈 수가 없네요. 새해 첫 주말, 지척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맛있는 별미를 먹으면서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보았습니다.
무술년 황금 개띠의 기운을 받아 올해에는 좋은 일만이 가득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오늘은 갈 수 없는 고향과 강하나 사이 두고 자연산 장어구이를 먹었지만 통일되면 내 고향인 평양 대동강 기슭에 있는 옥류관을 접수해 맛있는 별미를 먹으면서 살아온 삶에 대한 수다를 마음껏 털자고 엄지손가락을 걸며 약속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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