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해 못하는 남북의 언어

0:00 / 0:00

며칠 전에 금촌 초등학교 6학년생이 만든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제 13살 한창 개구쟁이인 초등학교 학생이 동영상을 만들었다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잘 믿어지지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설마 했거든요. 동영상은 한 탈북 어린이가 새로 전학 와서 적응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함북도가 고향인 13살 어린 소년이 엄마의 손목을 잡고 학교 교문으로 들어섭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담임교사의 안내를 받아 교실로 들어서려고 하는 아들을 다시 불러 세워 놓고 '친구들 앞에서 기죽지 말고 북한사투리 쓰지 말라'고 여러 번 반복해 함북도의 전형적인 사투리로 당부합니다. 담임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새로 전학 온 학생의 이름과 북한에서 온 이탈 주민이라고 소개 합니다.

개구쟁이 같이 생긴 한 학생이 쉬는 시간 작은 로봇 장난감을 서랍에 넣어 두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 뒤 한 여학생이 남자애가 넣어둔 로봇을 꺼내 보다가 그만 땅에 떨어뜨렸는데 떨어진 장난감은 그만 마사(부서)졌습니다. 당황한 여학생은 밖으로 나갑니다. 금방 전학 온 광일이가 마사진 로봇을 주워들고 망설이고 있는 순간 주인학생이 들어와 광일이를 꾸지람했고 광일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뒤늦게 광일이가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 학생은 광일이를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똑같은 장난감을 구입해 선물합니다.

공부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임진각을 찾은 광일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철교를 한참 바라보다가 꼭 다물었던 입을 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 고향은 저 강 건너에 있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저 곳이 바로 내 고향"이라고 말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제 눈에서는 걷잡을 수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입니다. 광일이 엄마 본인은 전형적인 함북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도 아들에게는 북한 사투리를 쓰지 말고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부탁 합니다. 이곳 남한에 온 우리 탈북자들이 걸어온 현실이거든요. 남과 북의 주민들이 같은 언어, 한국말을 사용하는 같은 한민족이지만 때로는 서로 뜻과 표현이 달라 통역이 아닌 통역이 필요할 때가 있어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지나간 10여 년 동안 이곳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각 없이 고향에서 사용하던 '일없습니다.'라는 말 때문에 때로는 많은 사람들을 웃겼지만도 서로 이해 부족으로 다투기도 했거든요. 생각해 보면 조금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처음 한국에 와서 마을버스를 탔는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 남자가 제 발을 밟았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저는 북한 사투리로 '일없어요,'하고 답했더니 그분은 왜 일이 없는 가고 일은 많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제가 조금 웃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목소리가 높아 졌고 옥신각신 했거든요.

당시 영등포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던 아들과 함께 퇴근시간에 잠깐 옷가게에 들렀는데, 아들이 북한 사투리를 쓰는 엄마에게 가격도 물어 보지 말라고 부탁하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여년이 지났네요. 때로는 지금도 북한 사투리 때문에 오해를 살 때가 있습니다만 사투리 때문에 손자 여석들에게까지 놀림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인가는 뜨거운 물이 손에 와 닿자 나도 모르게 '앗 따가워' 했거든요. 옆에 서 있던 손녀딸애는 따갑다는 이 할미의 말에 따갑다는 말은 가시나 바늘에 찔렀을 때에 사용하는 말이라고 하면서 뜨겁다고 옳은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얼결에 4살짜리 손녀 딸애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지금 새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과 특히 동영상에 나온 광일이처럼 때로는 뜻과 표현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