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

호텔신라의 사회공헌 사업인 '맛있는 제주만들기' 8호점인 봄솔식당이 개장한 가운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앞줄 왼쪽부터), 봄솔식당 정옥선 주인,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제주시 이도2동의 식당 앞에서 개장을 축하하는 '테이프 커팅'을 하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사회공헌 사업인 '맛있는 제주만들기' 8호점인 봄솔식당이 개장한 가운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앞줄 왼쪽부터), 봄솔식당 정옥선 주인,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제주시 이도2동의 식당 앞에서 개장을 축하하는 '테이프 커팅'을 하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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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한참 지나서 땀범벅이 되어 집에 들어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왠지 짠해집니다. 까만 티셔츠에 흰 소금기가 내 비친 옷을 손빨래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흐뭇하기도 하고 짠해지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아들이 중국 음식점을 개업했거든요. 사실 한달 전 쯤 아들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놀람과 함께 꾸지람도 많이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음식점을 개업해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많은 가족들은 말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도전도 젊을 때 해보아야 한다면서 응원해주기로 했습니다.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때로는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도 하고 때로는 이미 알고 지내던 식자재 사장님과 함께 꼼꼼하게 시장 조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과연 우리 집 아들답다고 대견해 했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의 의미를 요즘 아들의 모습에서 자주 느껴 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가족들이 잠든 늦은 밤 발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서는 아들의 든든한 모습에서 지나간 시간과 세월 속에서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한창 이 엄마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자라야 할 12살 어린 나이에 아들은 이 엄마와 가족과 생리별하고 북한 당국에 의해 집 뺏기고 추운 겨울에도 하늘을 지붕 삼아 길거리 나무를 기둥으로 의지하고 살아 온 아들입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들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거든요. 아무튼 지금 아들은 50평대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또 고급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으며 인제는 본인이 원하고 바라던 음식점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19살 때 처음으로 이곳 한국에 첫 발을 딛는 순간 벌써 아들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꼭 음식점 사장님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사장님이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흔하게 불러 주고 또 누구나 쉽게 사장님이 되는 줄로 알고 있었거든요. 하기에 나이가 조금 있는 분들에게는 사장님이라고 불러 주었습니다만 오늘은 사장이란 단어가 왠지 무겁게 느껴지네요.

비록 종업원이 5명밖에 안 되는 작은 음식점 사장님이지만 아들에게는 언제나 들어 보고 싶었고 해 보고 싶었던 깊은 의미와 뜻이 있어 '사장님' 이란 단어가 새로워지는 가 봅니다. 사업이 번창하게 되라는 의미에서 크고 좋은 꽃 화분도 하나 개업선물로 배달 시켰습니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 있다면 자신의 노력에 따라 그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나라가 얼마나 좋은가를 새삼 체험으로 느끼며 알게 됐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큼 내 것이 되고, 비록 한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성공의 길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뚜렷한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그 곳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에 빼앗긴 내 집을 다시 찾아 우리 가족에게 안겨 주는 것으로 아들과 우리 가족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 이 엄마의 목표이자 꿈이거든요. 우리 가족의 꿈과 희망이 실현될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한창 성장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옛날 어른들의 깊은 말뜻을 나이 먹은 지금에서야 알게 됐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