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기 만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8월의 여름은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그야 말로 불볕더위 찜질방 같네요. 만나는 사람들 마다 전화 하는 친구들마다 이 찜통더위에 건강은 어떠세요, 에어컨 바람에 감기조심 하라는 인사가 인제는 일상의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시가지를 벗어나 해수욕장으로, 공기 좋고 물 좋은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지난 주말 탈북 어머니회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계곡으로 피서를 다녀왔습니다. 서로 다른 거주지라 우리는 옹달샘 음식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지정하고 각자 자가용 승용차로 출발하기로 했거든요. 일부 승용차가 없는 친구들은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 함께 출발 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로 나뉘어 서로 출발하는 지점은 달라도 변한 없는 기분은 서로 붕 떠 있었습니다. 계곡은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계곡이었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로 흥성거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기들과 함께 물속에서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기이고 또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녀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녀들과 함께 동 심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 하고 있었습니다.
계곡에 도착 하자 우리는 준비 해 가지고간 큰 수박 3개를 흐르는 찬 물 속에 담가 놓았고 옹달샘 음식점 사장님을 불러 옻닭 백숙과 옻 오리 백숙. 그리고 쏘가리 매운탕을 시켰습니다. 산줄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찬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옻 닭다리를 들고 뜯으려는 순간 국방부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약 10분간에 걸친 생방송 인터뷰였는데 마침 북한에서도 여름휴가는 있는지, 또 북한주민들은 이 무더위를 어떻게 이겨 내고 있는지 등과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200일 전투에도 휴가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수영장과 해수욕은 일반 주민들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에도 서해와 동해 바다가 있고 해수욕장도 있지만 일반 주민들은 자유로운 몸이 아니기에 누구나 해수욕장을 찾을 수가 없으며 평양에 건설 해 놓은 수영장조차도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만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200일 전투 기간에는 휴가란 있을 수 없고 강한 통제 속에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를 얘기했습니다. 저의 인터뷰를 옆에서 듣고 있던 평북도가 고향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 이작은 계곡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더운 찜통더위를 피해 휴가를 왔다면서 에어컨이란 말조차 모르고 선풍기조차 없는 북한 사회에서는 피서 휴 가가 웬 말이냐고. 지금과 같은 찜통더위에 잠을 자다가도 달밤을 이용해 집 앞에 흐르는 작은 냇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가던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평북도 친구가 하루는 자다 말고 냇가에서 남편의 등목을 해 주고 있는데 조금 위쪽에서 말소리가 들려 가만히 가보았다고 하네요. 달빛에 비쳐지는 모습이 바로옆집의 젊은 부부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친구는 자주 냇가에서 옆집 부부를 자주 보게 되었고 목욕 뒤에는 함께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밤을 보냈다고 하네요,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을 해 왔다는 친구와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계곡으로 피서를 왔다고 승강이질이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도 두 친구의 얘기는 표현이 조금은 다른 것 같지만 내용은 같은 말이었거든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서로 고향에 대한 얘기와 지난 세월의 추억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화장실을 갔던 한 친구가 빨간 봉선화 꽃묶음을 손에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분위기는 지난 고향에서의 소꿉시절 동심으로 돌아가 어떤 친구들은 돌에 봉선화를 짓찧어 손톱에 올렸고 어떤 친구들은 다슬기를 잡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낮은 물속에 주저앉아 서로 물을 뿌려 주며 물장구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개구쟁이가 따로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이 찜통더위 속에서 작은 나무 그늘 밑에서 쉴 새 없이 부채질로 더 위를 달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내 고향 주민들을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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