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어느덧 훌쩍 가고 2014년이라는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국에 온지 벌써 11번째 설을 맞이하게 됩니다. 먹기 싫어도 해마다 꼭 먹는 것이 떡국과 나이라지만 너무 자주 나이를 먹는 것 같네요. 어릴 적에는 빨리 자라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꿈을 이루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인생의 황혼기인 지금에는 흘러가는 세월과 가는 시간을 멈출 수 없는 것이 그저 마냥 안타깝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만 제가 이곳 천국 같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내 고향 북한에 살아 있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아마도 제가 계속 고향에 있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쑥불쑥 해보지만 정말 북한주민으로서는 누릴 수 없는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는 지금은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주말 늦은 저녁, 이곳 한국에 와서 그동안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는 언니 집으로 갔습니다. 송년회에 참가했던 저는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 일도 없이 또 한 해가 훌쩍 간다고 생각을 하니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어 그 언니와 함께 올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전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잘 몰랐지만 제가 자식들 곁으로 이사 온 뒤로는 때로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외로워하는 언니를 위해 자주 언니 집을 찾곤 합니다. 더구나 요즘 언니는 고향에 있는 아들 소식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거든요. 이날도 역시 사전에 미리 언니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이미 언니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언니에게 무슨 이상이 생겼구나 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가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시샘할 정도로 언니와 저는 눈길만 봐도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랍니다.
벌써 언니의 얼굴과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평상시 혈압이 조금 높은 언니인 지라 혹 고혈압으로 병이 나지 않았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언니는 혈압이 오른 것이 아니라 고향에 두고 온 아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아픈 마음을 도저히 달랠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언니는 얼마 전에 아들에게 2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미화로 2,000달러 정도 되는데요. 언니는 이곳 한국에 와서 큰 수술을 2번이나 한데다 큰 벌이가 없는 언니에게 200만원은 정말 큰돈입니다. 하루하루 힘들게 부업을 해 아끼고 모아 아들 손자에게 해마다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200만원이면 돈을 전달해주는 브로커가 30%를 떼고도 중국 돈으로 환산하면 7,000위안은 아들 손에 들어가야 하건만 아들은 겨우 중국 돈으로 1,000위안 밖에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원산에 살고 있는 아들은 일주일째 집으로 가지 못하고 국경연선에서 돈을 더 요구하면서 하루에도 전화를 몇 번씩이나 걸어온다고 합니다.
아들은 어머니 사정을 모른 채 무조건 도와달라고 하고 엄마인 언니는 더는 도와줄 수 없다며 국제 전화로 일주일째 옥신각신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그 아픈 마음은 저 역시 알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와 꼭 같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저로서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마치 하늘에서 큰 돌벼락이라도 떨어지는 듯 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저는 한참만에야 그저 액땜한 줄로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과 함께 그저 언니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순간 저는 제가 하는 말이 위로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슨 말인가는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언니와 저는 다시 한 번 우리 북한 주민들의 비극적인 현실이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지가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 추운 겨울 따스한 온돌방은 생각할 수도 없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한 해가 바뀔 때마다 비는 소원과 희망은 하루빨리 남북이 하나가 되어 죽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보는 것입니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지는 건 한 해가 가고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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