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제부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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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해 놓은 일도 없이 자꾸만 나이만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쓸쓸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1월 1일 저는 친구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자는 친구의 제의로 '제부도'라는 섬에 가게 됐습니다. 친구 영숙이네 부부와 옥금이네 부부, 영희네 부부, 그리고 저까지 우리 일행은 모두 7명이었습니다.

제부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으로, 서해 바다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섬입니다. 제부도는 하루에 두 차례 바닷길이 열리는 섬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겨울바다 여행이라 설레어서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풍가는 어린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웠습니다. 영하 10도 아래까지 떨어진 매서운 한파였지만, 우리는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영숙씨 부부의 차에 함께 탔습니다. 자가용 승용차 3대가 동시에 서울을 출발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약 2시간 남짓 걸려 목적지인 제부도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하루에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으로,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시멘트 포장길을 차로 들어갈 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썰물 때면 어른 허벅지까지 물이 빠졌던 갯벌이었는데, 1980년대 말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겨 지금은 자가용차들이나 버스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마음대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물이 빠지는 시간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사전에 물때를 알아봐야 한다기에 우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시간을 알고 갔습니다. 도로를 따라 광활한 갯벌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분은 경이로웠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입에서는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창문 밖에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흰 눈이 섞인 얼음이 쌓여 있었습니다.

섬에 도착한 우리는 맨 처음 등대로 갔습니다. 등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우리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습니다. 주위에 있던 식당들에서는 서로 자기 식당으로 오라며 손짓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음씨 착해 보이는 아저씨들, 상냥해 보이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젊은 처녀, 총각들이 각양각색의 신기한 옷차림을 하고 나와 관광객들을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희극배우들을 보는 것 같이 재미있었습니다.

바닷가 섬에 왔으면 무조건 회를 먹어야 제격일 것 같았지만, 우리는 한눈에 들어온 간장 게장을 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울에서도 간장 게장을 먹어 보았지만, 참 별맛이었습니다. 저는 게 등껍데기에 밥을 비벼 누가 볼세라 단숨에 밥 한 공기를 먹어 치웠습니다.

식당 사장님은 뚱뚱한 아줌마였는데 맛있게 먹는 저를 보고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북한 사투리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우리 일행에게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로 게를 많이 잡지 못해서 게장이 지난해보다 값이 비싸졌다고 하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고향이 평양이라는 제 말에 사장님은 평양에서도 이런 게장을 먹어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년 전 시어머님이 처음으로 담그어 준 게장을 먹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게장을 먹고는 꿀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수다를 떨면서 맛있게 밥을 먹느라, 그만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놓쳐 버린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제부도에 갇히게 됐습니다. 잠깐 당황했던 우리는 이왕 이렇게 됐으니 차를 타고 섬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차를 타고 제부도를 돌아보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2차로 눈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따끈따끈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받쳐 입에 대는 순간 참으로 낭만적인 느낌이 들면서 행복했습니다. "커피는 바로 이 맛이야" 하는 친구 영숙이의 말에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맛보는 커피의 진한 향을 온몸으로 느껴 보았습니다.

바닷물에 잠겨 있던 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타난 갯벌은 추운 겨울이라 두터운 얼음이 한층 깔려 있어 조금 미끄러웠습니다. 그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저는 차창 문을 열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나게 불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에 얼굴이 시리고 귀가 빨개졌지만 제 마음 속엔 또 하나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새겨졌습니다.

나이 들면서 한 해, 한 해 가는 것이 더 많이 아쉽지만, 새해에는 제게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좋은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북쪽에 있었다면 가질 수 없었던 내일에 대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