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지낸 양력설의 아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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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나이 한 살 먹는다고 아쉬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나 2017년 새해를 맞았네요. 지난 1년은 마음 아픈 일도 있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이기도 합니다.

한 일 없이 한 살 두 살 나이만 자꾸 들어가는 것이 아쉽네요. 예전엔 모든 것이 부족했고 오로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야만 했었지만, 행복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곳 한국에서는 내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 외에 나 자신의 생활을 보다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행복 지수를 결정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기에 시간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커피숍과 영화관과 극장 그리고 등산길에 오르기도 하는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왔으니까요. 나의 새로운 오늘의 삶이 지난날에는 꿈을 꾸어 볼 수도 없고 그냥 한 장의 화보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려 볼 수 있었던 삶이거든요.

정유년 새해 첫 기운을 받고자 아침 일찍 창문을 활짝 열어 집안 공기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소원을 빌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여 지난해 못지않게 새해에도 하고자 하는 일에서 대박 나고 또 하나, 사랑하는 손자들 역시 건강하고 씩씩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시원한 기운과 함께 아침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식사 준비는 간단했습니다. 양력설에는 바쁘다는 구실로 자식들과 손자들이 한 명도 오지 못했네요. 조금 아니 많이 서운하기도 했습니다만 젊은 시절에 바쁘게 사는 것도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니 즐겁기도 합니다.

11시쯤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언니분이 찾아 왔습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양력설을 크게 보내지 않다 보니 모든 음식점과 커피숍도 운영하네요. 언니들과 함께 커피숍에서 남과 북한의 양력설 분위기에 대해 얘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자 들이 모이면 먹는 얘기로 시작 한다고 합니다만 나이가 많은 언니들 역시 똑같은 여자이기에 첫 얘기를 먹는 문제로 시작했습니다.

한 언니는 오래 전에 실향민 집을 방문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제일 기억에 남은 것은 평양만두 맛이라 합니다. 또 한 언니는 속초에서 유명한 아바이순대와 명태순대 그리고 명태식혜의 맛이 궁금하다고 합니다. 저는 요리사가 아니기에 자신은 없지만 평양만두와 명태식혜를 만들어 대접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백종원이라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제일 나이가 어린 제가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또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분들이라 제가 한번 식사 대접 한다는 기분으로 계산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한 언니가 제 손을 잡으며 오늘은 얌전하게 그냥 있으라고 하네요.

언니들이 사주는 맛있는 점심에 함께 소주 한잔 했습니다. 고맙고 감사 하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와 그야 말로 아는 사람 한 분 없어 처음에는 조금 외롭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고마운 언니들이었기에 제가 낯선 곳이지만 아파트 동대표가 될 수 있었고 그런 분들이 제 등 뒤에 알게 모르게 든든하게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울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내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평양시민들은 양력설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오래 전 고향에서의 설 명절, 시댁에서 만둣국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전철과 버스와 궤도 전차를 놓치고 그만 만경대 구역에서 선교 구역까지 추운 밤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걸었습니다. 한창 대동교를 걷고 있는데 손목에 끌려오던 큰 딸애가 대동강 강바람에 춥다고 꽁꽁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울던 그 시절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언제이면 지난날의 아픔의 상처들이 가시어 질지. 가는 시간과 세월은 자꾸만 흐르지만 상처의 아픔은 가셔지지 않을 듯 하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