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날 저는 친구들과 함께 충남 서산의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보며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조금 어려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제 마음을 알아주듯 해는 서산의 바다너머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넘어 갔습니다. 주변 바닷물은 서서히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마치 빨간 물감을 뿌려 놓은 것처럼 붉게 빛이 났습니다.
맵짠 날씨와 강한 칼바람이 불어와 제 얼굴을 칼로 베는 것처럼 추웠지만 마음은 훈훈했습니다. 마치 가기 싫어 천천히 넘어가는 해를 바래주듯 우리는 '우와'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고 한 해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확 날아가는 듯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천이 고향인 언니에게는 지난해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딸이 탈북해서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송환 되었는데 북한 보위부의 모진 고문으로 다리를 다쳐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아픔으로 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함께 간 우리 모두는 이미 겪은 일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짠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가슴 아픈 상처들이 있는 친구들은 이 비극 같은 현실이 언제야 끝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루 빨리 북한체제가 무너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어 우리처럼 잘 살 수 있는 그날과, 더불어 당당하게 고향을 왕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심정은 누구나 한결 같았습니다.
저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비록 지난해에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아픔도 있었지만 새해에는 보다 좋은 일들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하는 일이 보다 더 잘되기를 빌었습니다. 점점 날씨가 더 차가워지자 나이가 조금 있는 한 언니가 날씨가 춥고 또 이제 해도 아주 넘어 갔으니 빨리 들어가자고 합니다.
왠지 저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검푸른 바닷물이 나를 향해 무섭게 다가옵니다만 순간 사정없이 몰아쳐 오는 파도 속에 부모님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6녀 1남 우리 7남매를 이 세상에 낳아 강하게 키워 주신 그야말로 다른 어머니들보다도 강한 어머니였습니다. 그 밑에서 자란 저였기에 오늘날 제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그 어렵고 험한 길을 걷고 걸어 이곳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부모님의 모습에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사무쳤습니다.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이제 부모님을 찾아 뵐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네요.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꼭 찾아뵙겠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제 입에서 나왔거든요.
다음으로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조개구이 집으로 갔습니다. 책상 세 개를 붙여 자리에 앉은 후 빨간 불이 펄펄 이는 화로가 들어오자 그때에야 저는 정말 추웠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뜨끈한 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그동안 꽁꽁 얼었던 몸이 녹아내리듯 했습니다.
고향에서는 맛 볼 수 없었던 조개 구이. 바다가 멀리 떨어진 산간 지대인 량강도가 고향인 한 친구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됐지만 조개 구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면서 세상에 태어나 난생 처음으로 먹어 보는 조개 구이라고 합니다.
한 친구는 지나간 추억을 합니다. 고향에는 큰 강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강가에서 꼬막 조개를 잡아 가지고 가면 어머님이 된장국에 넣어 끓여 주었는데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구수하고 맛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큰 조개를 한두개 잡아 가지고 가면 어머님이 조개 속에 들어 있는 거머리를 뽑아내고 꼬막 조개와 함께 끓여 놓으면 동생과 서로 큰 조개를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동강에서 작은 꼬막 조개와 다슬기를 잡아다가 큰 가마에 삶아 놓으면 우리 아이들이 고사리 같이 작은 손에 이쑤시개를 한 개씩 들고 다슬기를 뽑아내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하며 조개 구이를 한참 먹고 있는데 한 친구가 말합니다. 동해 바닷가 옆에서 태어나 자라났지만 군인들 때문에 언제 한번 자유롭게 동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해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가서 해수욕을 해 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면서 탈북어머니회 회원님들과 함께 고향에 가서 조개 구이를 실컷 먹자고 합니다. 비록 크게 웃으면서 한 소리였지만 그 친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맥주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권했습니다.
짠하고 마주치는 맥주잔 소리를 듣는 제 마음은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고 또 뿌듯했습니다.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해 수다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됐습니다. 우리는 서산에 살고 있는 한 친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비록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해의 지나온 추억을 다시 한 번 해보았습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추억들이 더 많은 것 같네요. 힘들었던 것은 좋은 경험과 교훈으로 삼고 좋은 추억들만을 살려 2015년 양띠 해에는 보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올해가 양띠인데 저도 양띠거든요.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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