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와 동해안 해돋이

0:00 / 0:00

1월 1일 새해 첫 아침이었습니다.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로부터 카카오톡과 문자로 새해를 축하한다고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가 쉴 새 없이 날아옵니다. 미처 일일이 답장해 주기조차 바쁠 정도입니다. 30일 저녁부터 시작해 1일 당일 저녁 시간까지 잊을 만하면 날아오고 또 잊을 만하면 또 날아오고 그동안 열심히 사느라 아주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친구들과 동생 조카벌 되는 친구들에게서도 끊임없이 날아 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해서 하고자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문자와 함께 예쁜 사진이었습니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면 9개 머리 가진 짐승이 내려와 눈썹을 하얗게 만들어 준다는 속담 그대로 시간을 지키느라 아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주알고주알 지나간 추억을 하며 늦은 밤을 보냈습니다.

다른 친구들 역시 고향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들이 뜬금없이 강원도 해돋이 구경을 가자고 합니다. 다음날 사위들과 손자들이 오기로 되어 있어 저는 조금 주춤 했습니다만 그냥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하여 2시가 조금 지나 우리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갓 이사 온 옆집에서도 강원도 강릉 경포대로 해돋이 구경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도 강릉 경포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도착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만 우리의 착각이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재빠른 동작으로 따끈한 차 한 컵을 손에 들고 물결치는 군중 속에 합류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속에 점점 추웠습니다. 두툼한 뜨개 양말에 등산화에 두툼한 잠바를 입었지만 추위는 살을 여위듯 밀려 왔습니다. 그러나 추운 줄 몰랐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습니다만 날이 흐린 탓에 구름 속에 해가 숨어 있었습니다. 기다림에 비교하면 또 새벽잠을 설치고 바쁘게 달린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비록 구름 뒤에 숨어 그야말로 숨바꼭질 하듯이 까꿍 하는 붉은 해를 보면서 두 손 모아 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 가족들의 건강과 더불어 하는 일과 또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따끈한 어묵 국물을 입에 넣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어묵이었지만 정말 추위 속에서는 별미였습니다.

조금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운전하는 듬직한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잠시 잠깐 고향에서의 지나간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자유가 없는 내 고향 설날, 해돋이는 물론 지방에 살고 있는 친척 집에도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는 내 고향 북한. 해돋이가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것은 알고 살아 왔지만 언제 한 번 동해바닷가에 가서 해돋이를 구경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손 전화기에서 카톡이라는 말이 튀어 나옵니다. 주머니 깊이 넣어 두었던 손 전화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10통이 넘는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답장을 해 주면서 참, 너무도 좋은 세상에 와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았습니다.

'지난날 내 고향 평양에서는 설날이면 연하장을 수 없이도 많이 쓰고 했었는데' 이런 말이 내 입에서 스스럼없이 튀어 나왔습니다. 옆 좌석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이곳 한국에서도 60년도 그 시절에는 편지로 혹은 연하장으로 서로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는 말을 합니다.

지금 21세기의 북한 주민들은 먼 옛날 60년대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뒤떨어진 낡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마음이 짠하고 아팠습니다. 비록 우리 국민들에게는 사소한 것이지만 북한 주민들로서는 상상도 생각도 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딸들과 사위 그리고 조카사위와 손자 녀석들이 주인도 없는 할미 집에서 벅적이고 있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손자들과 사위들이 순서대로 새해 설 인사를 합니다. 어느새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지나간 세월 너무도 야속했던 그 세월 아픈 상처를 안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던 그 순간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과연 내가 만약 평양에 살고 있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이 나이에 카카오톡으로 순간순간 안방에 누워 친구들과 서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서로 공유할 수나 있을까? 그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때로는 볼을 꼬집어 볼 만큼 잘 믿어지지 않을 만큼 꿈만 같은 내 인생의 삶에 대해 새삼 느껴 봅니다.

언제나 좋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있는 저는 늘 행복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