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나들이

0:00 / 0:00

새해 첫 나들이로 손자들과 함께 평택시 진위면에 있는 무봉산 청소년수련원 눈썰매장을 다녀왔습니다. 1633평, 5400여 제곱미터의 면적을 자랑하는 무봉산 눈썰매장은 성인용과 유아전용이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이 공간들이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또한 눈썰매장에는 이용자들을 위해 추위를 녹일 수 있는 여러 개의 난로가 있었고 매점과 편의 시설들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눈썰매장에는 또 시민들의 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요원들이 각 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눈썰매장까지는 약 20분 거리였습니다. 눈썰매를 타러간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설렘이 가득한 손자 녀석들은 목적지에 도착해 눈썰매장을 보는 순간 설렘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습니다. 손녀딸은 좁은 차 안에서 개다리 춤까지 춰가며 난리법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그 속에서 아이들이 제 품안에서 떨어질세라 저는 두 손자 녀석들의 손목을 꼭 잡았습니다. 먼저 달려간 아들이 썰매 3개를 끌고 왔습니다. 손녀는 빨간색, 그리고 손자는 파란색, 며느리는 노란색의 썰매를 잡았습니다. 저는 손녀딸과 함께 타기로 했고 손자 녀석은 제 아빠와 그리고 며느리는 아들과 함께 타기로 했습니다.

썰매를 타기 위해 비탈길로 오르는 손자 녀석들의 기분은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출발점에 섰습니다. 눈썰매를 처음 타보는 5살짜리 손자 녀석은 조금 공포에 질려 있었나 봅니다. 그것도 순식간, 우리는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씽씽 잘 달려 내려가건만 제가 탄 썰매는 잘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안간힘을 써가며 겨우 밑으로 내려가서 보니 그만 썰매 끈이 밑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처럼 역시 마음이 조급했나 봅니다. 경험이 있는 손자 녀석들은 신이 나 어른용 썰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른용 썰매장의 거리는 거의 100m나 되거든요. 하지만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썰매를 대담하게 혼자 타겠다고 조르는 손녀를 위해 저는 다시 짝을 맞춰주었습니다. 아들은 밑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고, 손자는 제가 안고 타기로 했고, 사위는 혼자 타기로 했습니다. 출발점에 당당하게 선 손녀딸이 대견하기도 했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탄 거리의 두 배나 됐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혹 넘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은 손녀 쪽이 아니라 제 쪽에서 터졌습니다. 씽씽 잘 달려 내려가다가 그만 저와 손자가 앉은 썰매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같이 넘어졌던 겁니다.

순간 쑥스럽기도 했지만 창피스러웠습니다. 손자 녀석은 제 사촌누나한테 뒤떨어진다고 야단이었고 손녀 딸애는 놀려대기도 했습니다. 경사지에서 뒹굴면서도 저는 손자 녀석만은 놓지 않으려고 꼭 껴안았는데, 순간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제 고향에도 만달산 옆에 수도국산이 있었습니다. 수돗물을 저장하는 탱크가 있다 하여 수도국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관이 터진 것으로 인해 그렇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만 해마다 겨울이면 그 산에는 빙판이 생겼거든요.

만달산 옆에 붙어 있는 봉우리라 꽤 높았습니다. 마대를 타고 얼음판으로 남자 애들과 함께 정신없이 달려 내려오던 저는 그만 넘어져 뒹굴었는데 나무뿌리에 치어 무릎에서는 이미 빨간 피가 콸콸 쏟아져 흘렀습니다. 하지만 온몸은 이미 꽁꽁 얼어 있는 상태라 아픈 줄 모르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를 볼 때이면 즐거웠던 어린 시절 추억으로 홀로 웃기도 합니다.

눈썰매장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아들이 달려왔습니다. 쑥스럽고 창피함은 간데없고 나름대로 즐겁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3번, 4번 너무도 즐거워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세 번째 타기 위해 비탈길로 올라가면서 5살짜리 손자 녀석이 지쳐 저에게 끌려가다시피 올라가기도 했습니다만 썰매를 타고 내려올 때에는 올라갈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느새 해는 지고 날씨는 쌀쌀해졌습니다. 이미 아이들은 지쳐 있었지만 한번만, 또 한 번만 타자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오자는 약속을 한 채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눈 속에서 땀을 많이 흘린 가족을 위해 아들은 회사에서 명절 보너스를 탄 기분으로 한턱을 낸다 합니다.

불고기보다 뜨끈뜨끈한 탕이 좋아 소문난 부대찌개 집으로 갔습니다. 부대찌개는 한국 전쟁 직후 어렵던 시절, 의정부시에 주둔하던 미군부대에서 쓰고 남은 깡통에 든 햄과 소시지, 콩 등을 가져다 끓여먹었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한 끼 식사로, 또 술안주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눈썰매를 타느라 땀을 많이 흘렸고 또 뜨끈하고 매콤한 부대찌개로 인해 땀을 흘리고 있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저는 순간 설 명절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한상 차려 주지 못해 마음 아팠던 지나간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설 명절, 오늘도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비록 설 명절이지만 당장 가마에 끓일 것과 땔감이 없어 한숨만 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올해에도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