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한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따듯한 옷을 입고 외출하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요즘 이곳 한국의 겨울 날씨치고는 아침저녁으로 조금은 추웠습니다만 고향이 평양인 저에게는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가족도 없이 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이 제일 걱정이 됩니다.
추운 날씨 탓에 이런 근심을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이곳 남한에 온 탈북 청년 대학생들이 남한 대학생들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으로 홀로 살고 계시는 독거노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구멍탄을 운반해 주는 모습이 나옵니다. 탈북자들도 인제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또 그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은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구멍탄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바라만 보아도 춥지 않다고 말하면서 올 겨울은 정말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 할머니의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도 구멍탄 한 덩어리가 없어 추위에서 꽁꽁 얼어 떨었던 아픈 추억이 있었거든요.
제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가루탄을 공급했습니다. 어머님은 가루탄을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석탄에 빨간 진흙을 1:2로 잘 배합해 물을 붓고 버무립니다. 그것을 바로 진탄이라고 하거든요. 새벽 일찍 일어나 아궁이를 털어내면 석탄재 먼지로 온 부엌이 가득합니다. 그러면 털 개로 먼지를 털어 내고 청소를 하고 쌀을 씻고 반찬 준비 하노라면 그때서야 아궁이에서는 파란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그 이후에 조금 발달하여 19개 구멍이 있는 구멍탄으로 개조됐습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구멍이 많은 관계로 석탄과 불 화력이 많이 낭비된다는 이유로 11개 구멍이 있는 구멍탄으로 또 개조되었습니다. 1개월에 11개 구멍이 있는 구멍탄 70덩이가 한 가구에 공급 규정량으로 규정되기도 했습니다만 어느 때부터인가 규정은 어디로 가고 1년에 설날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에만 공급이 되었습니다.
운반하는 과정에 부서지고 또 차에서 부리고 나누어 주고 하는 과정에 부서지고 하다 보면 그나마 차례지는 구멍탄 덩이는 말이 70덩이지 실제로는 구멍탄 겨우 30덩이였습니다. 주민들에게는 일 년에 겨우 2번 차례지는 이 작은 구멍탄도 식량 못지않게 아주 귀중하고 소중했습니다.
그나마도 주민들이 휘발유나 디젤유를 모아 공급원에게 줘야 얼마 안 되는 구멍탄도 받을 수가 있었거든요. 구멍탄 공급 날이면 응당히 인민반장과 주민들 간에는 꼭 전쟁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기에 인민반장들은 한 덩이라도 더 받아 주민들에게 주려고 공급원과 싸우고 구멍탄 사업을 하기 위해 밤, 야간 간식도 조직하고 음료수도 끓여 대접합니다.
밤새 싸워가면서 구멍탄을 받아 쌓아 놓으면 비록 작은 숫자이지만 정말 짧은 순간이나마 마음이 흐뭇하고 발 뻗고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남편이 자체로 석탄 한 톤 구입을 했는데 아마 그때가 1월 중순쯤이었습니다. 구멍탄을 빚었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보니 한 덩이 빚으면 꽁꽁 얼고 또 한 덩이 빚어 놓으면 기계에서 나오기도 전에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밤마다 겨울 잠바를 입고 신발을 신은 채 한 이불 속에 온 식구가 뭉쳐 자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얼어 죽는다는 그런 심정이었거든요. 밤새 추위에 떨며 잠을 못자고 울고 있는 우리 아이들, 빨갛게 꽁꽁 언 손과 발을 입김으로 불어 주면서 지긋지긋한 밤을 보내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 몸이 꽁꽁 얼어붙는 듯합니다.
한 덩이의 작은 구멍탄이 없어 추위에서 덜덜 떨며 살아왔던 아픈 추억이 있는 저이기에 높이 쌓여 있는 구멍탄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보기만 해도 추위가 없어지고 흐뭇하고 행복하다는 그 어르신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이미 그전부터 알았습니다. 추위가 심하면 심할수록 배고픔이 더 하고 배고픔이 심하면 더 춥고, 추위와 배고픔은 떼 놓을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인간 생활의 초보적인 먹는 문제와 땔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 고향 주민들은 구멍탄이 부족해 추위에서 떨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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