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명절마다 생각나는 두고온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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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양력설을 보내느라 손자들과 웃고 떠들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음력설이 왔네요. 세월은 너무도 빨리 흘러갑니다. 지금 이맘때면 북한에는 많은 눈이 내렸겠죠. 북한에서 해마다 설 명절 밤에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치느라 도로에서 밤을 보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1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어 내 고향 평양시도 몰라보게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보니 별로 변하지는 않은 듯도 합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이 추운 겨울 내 고향 사람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놓을 꽃을 마련하느라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동포들을 위해 이곳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꽃들을 보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 온 첫날부터 오늘날까지 KBS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시청하고 있답니다. 어제도 저는 방송시간이 되어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지난주에 방영됐던 40대 중반의 한 남자분이 누나를 만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들이 부모님의 산소를 찾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왔고 뒤이어 6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나갔다가 그만 어머니 손목을 놓쳐버린 후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고아원으로 가게 됐고 결국에는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고 하는 새로운 출연자가 영어로 부모님을 찾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미국에 있는 새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는 미국 국적을 가진 40대 한국여성이 사랑하는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분도 3명의 자녀를 둔 한 엄마가 됐고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아이들의 부모가 된 그는 자라나는 자식들을 보면서 한국의 사랑하는 가족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제 고향 평양에 현재 살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손전화기의 메일을 통해 받았습니다. 언니와 생이별 한 지 15년 만에 저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느덧 사랑하는 언니의 머리엔 벌써 흰서리가 내렸고 언니도 이 동생처럼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어 평양의 어느 한 공원의 잔디밭에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전화로 언니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서로가 하염없이 울고 울었건만 오늘은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간 추억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모의 목소리를 들으며 너무 늙은 것 같다고 했었는데 사진을 보고는 하루 빨리 이모도 이곳 대한민국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뿐이 아닌 우리 탈북자들 모두는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가 아픈 상처를 가진 채 명절은 물론 평상시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도 잊지 못합니다.

사계절 철 따라 더운물 찬물 가림 없이 콸콸 나오는 좋은 집에서 추운 줄, 더운 줄 모르며 좋은 옷을 입고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또 동해, 서해, 남해 바닷가와 산세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도 언제나 잊을 수 없고 하염없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랑하는 자식과 부모 형제랍니다.

7년 만에 만난 아들과의 상봉 그리고 6년 만에 큰딸과의 상봉. 그날은 정말 제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2년 2월 송화강 잡지책에 '김춘애 어머님께서 큰딸을 애타게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고는 어느 한순간도 손전화기를 목에서 풀어놓지 못했고 아들을 중국 청도까지 데려오는 그 순간까지 3일 동안 뜬 눈으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 대한민국에 도착하자 처음부터 저는 나이 80이 다 된 어머니가 그나마 마지막 여생을 천국 같은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새 삶을 살아 보도록 소원을 풀어 주려고 노력하던 도중 어머니는 그만 사망하셨습니다. 그 뒤로 항상 저는 불효자식이라는 것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형제들과 전화통화에서도 항상 이런 말을 빼놓지 못하곤 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형제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해도 다 할 수 없고 장편소설을 다 써도 못다 쓸 가슴 아팠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실컷 울자고 했습니다. 날마다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들여다보지만 어제는 텔레비전을 보는 도중 저도 모르게 손전화기에 등록되어 있는 언니의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방송에 나오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지금 우리 탈북자들 중에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의 소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집 없이 떠돌면서 살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두만강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추방이나 감옥에 가 있는 가족들이 있어 아무리 연락을 해도 찾을 수가 없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해마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이면 더더욱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가족들과 함께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고향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노라면 저도 언제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산소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그 날이 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탈북자들도 떳떳하게 텔레비전에 나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찾게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