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도 제설작업 강요하는 북

추운 날씨 속에서도 얼음 놀이를 하려고 압록강변을 찾은 북한 신의주 어린이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얼음 놀이를 하려고 압록강변을 찾은 북한 신의주 어린이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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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제법 겨울 맛이 났어요. 지난 주말은 손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 인생에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오전에는 손자의 유치원 재롱 잔치에 참가했고 오후에는 눈썰매를 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그야말로 손자들과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 일찍 평택에 도착해 문화회관으로 갔습니다. 이미 많은 학부모들과 꽃을 파는 상인들로 벅적이었습니다. 사탕이 들어 있는 예쁜 꽃묶음 한 개를 구입해 손에 들고 손자여석들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벌써 재롱 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손녀가 다니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춤과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방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날개 달린 예쁜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데 손녀의 손동작과 발동작 그리고 엉덩이 놀림은 정말 내 손녀가 맞는가 할 정도였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저는 무대 위로 올라가 손녀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고 볼에 입맞추어 주었습니다. 관중 속에서는 술렁임과 함께 박수와 함께 웃음이 터졌습니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부모 중에 단 저만이 무대 위에 있었습니다. 조금 쑥스러워 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면서 "역시 손녀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네요." 하고 오히려 덕담 한마디로 많은 학부모들은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누가 웃건 말건 행복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저는 개구쟁이 손자들을 부추겨 썰매장으로 갔습니다. 썰매장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지만 어린들과 학부모들로 북적이었습니다. 썰매장은 작은 야산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야말로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 정신이 들었습니다. 눈썰매를 끌고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처음에 애들은 좋아라 힘든 줄 모르고 잘 올라갑니다.

100m 잘 되는 높이건만 개구쟁이들은 어려움 없이 씽씽 달려 내려옵니다. 갑자기 손자 여석이 대한민국만세를 외칩니다. 비록 작은 등성이었지만 마을로 우렁우렁 메아리 쳐 갑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모습도 누가 어른이고 애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한 추위로 다른 날보다 추웠지만 저 역시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달리던 저는 그만 중간에서 작은 손녀와 함께 썰매에서 탈출해 달려가던 속도로 뒹굴었습니다. 딸이 달려오더니 손녀부터 챙기는 모습에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만 점점 지쳐 가는 손자여석들의 모습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한 2시간 남짓 썰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배가 출출했습니다. 해물탕집으로 갔습니다. 손자들 역시 밥술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를 모르고 눈 깜박할 사이 밥 한 공기를 먹었습니다. 사위는 매일 밥시간에 애들과 싸우지 말고 썰매장으로 가야 하겠다고 우스갯소리 한 마디 합니다.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잠깐 지나간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었던 내 고향 평양에서 겨울방학이오면 갈 곳이 없어 집에서만 있어야 했던 우리 아이들. 놀 거리, 즐길 거리가 없어 기나긴 겨울방학 기간 티격태격 자주 싸우던 우리 아이들. 눈이 오는 날이면 학교 운동장과 도로로 눈 밀개를 들고 눈 치우러 달려가야 했던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추운 겨울 아침 이었습니다. 한 개 밖에 없는 눈밀개를 두고 싸우고 있는 애들에게 큰애에게는 삽을 쥐어 주고 둘째에게는 소랭이를 쥐어 주고 막내아들에게 눈밀개를 쥐어 주었습니다. 어둑어둑한 늦은 저녁에야 꽁꽁 얼어서 돌아온 우리 아이들을 위해 생명태국을 끓여 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꿈과 희망, 포부가 많은 우리 아이들이었건만 북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방학이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야할 우리 아이들은 삽과 곡괭이 눈밀개를 손에 들고 꽁꽁 얼어드는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 가며 눈을 치우는 노동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