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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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SBS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죄를 짓고 수감되어 있는 수감원들이 교도소 안에서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충격적인 사연이었습니다. 그 합창단에는 규성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미성년인 규성이는 술을 마시고 친구를 살해한 아주 엄중한 살인 범죄자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잘생겼고 아주 참한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교도소에 발걸음을 하게 해서 또 다른 죄를 짓게 됐다고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고, 면회 오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사랑하고 미 안하고 죄스럽다고 반성했습니다. 또 죽은 친구의 어머니에게도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고 자기 죄를 씻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그의 진심을 읽게 됐습니다.

비록 죄를 짓고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였지만 그 속에서 합창단원이 되어 노래를 부르며 화합하고 있는 그들은 건강이 많이 안 좋은 주임님을 고향에 있는 친아버지보다 더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그대에게만 드립니다' 라는 노래를 합창으로 불렀습니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에게서 재청이라는 말과 함께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평생 환호를 처음 받아보았다는 그들, 너무 행복하고 꿈만 같다는 그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어도 꿈만 있으면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들의 참 모습을 보는 제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난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제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었을 때 보위부와 군안전부 감옥생활 그리고 로동단련대와 집결소 등 감옥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로지 추위와 굶주림이 싫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 북송되어 고문과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낮에는 악착같이 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담요 한 장 없이 자야했으며 이와 빈대에게 물리거나 피부병에 걸려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또 몸이 아파도 죄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약한 첩 써보지 못하고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고 온몸이 피투성이 되도록 매를 맞아도 내가 왜 무엇을 잘못해 맞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겨우 3개월이 된 아기에겐 중국 남자의 자식이라며 두꺼운 책으로 얼굴을 때리고 임신부에겐 유산시키기 위해 배를 구둣발로 차고 운동장을 밤새 뛰게 하는 야만적인 만행을 감행해도 누구 하나 말할 수조차 없고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애들 아빠 역시 증산군 노동 교화소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간수에게 매를 맞아 죽었고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역시 탈북해 중국에서 남한 사람을 만나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정치범 감옥에 수감되었다 하루 만에 죽음을 당했기에 저는 언제나 감옥과 교도소 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지금도 자다 소스라쳐 깨어 보면 온몸에 땀투성이가 된 제 모습에 놀라 잠을 설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12살이었던 제 어린 아들은 부모 없이 집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관리소에 가게 됐는데 그 속에서 꽃망울이 채 피기도 전인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고 서로 싸우다 맞아 죽은 시체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도소 수감자들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저였기에 텔레비전을 통해 두 현실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죄를 지은 범죄자라면 큰 죄든 작은 죄든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습니다. 부모, 형제들의 면회는 3개월에 한번 겨우 하게 되어있고, 언론의 자유와 인권을 박탈하고 유린하는 건 당연시했습니다.

고향에 편지를 쓸 수도 없습니다. 제한돼 있는 그 짧은 면회 시간마저도 감시대상이 돼 있어 안부의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때리고 싸우게 하고 강한 자는 약자를 죽이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 범죄는 나이에 관계없이 무조건 공개 총살합니다. 또 고난의 행군시기에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농장 밭에 들어가 강냉이 한 이삭을 뜯어 먹은 죄를 졌다고 공개 총살을 하고, 금방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속도전 돌격대로 배치를 받은 18살 소년이 배치된 돌격대로 가지 않았다고 교도소로 보내고, 죄 없는 가족들은 지방으로 추방을 했습니다.

군에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18살 어린 소년이 배고픔에 시달리다 못해 농장에 있는 소를 잡아먹으려고 죽였다고 공개 총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빨간 공책마다 있는 김일성 초상화나 김정일 초상화가 찢어지거나 그 흔하디흔한 김일성, 김정일 초상휘장이 땅에 떨어져 발에 조금 밟혀도 정치범 수용소로 온 가족이 가야하고, 술자리에서 김일성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온 가족이 하룻밤 사이에 정치범 수용소로 가게 되는 곳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회에서는 남편이나 친척은 물론 때로는 부모 형제들도 믿을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대한민국에서는 죄도 아닌 죄를 만들어 수많은 주민들을 공개 총살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삼수갑산으로 추방 보냅니다. 그렇게 2,300만 인민들을 울타리 없는 감옥에 가둬 놓고 두 눈을 빤히 뜨고도 맹인이 되게 하고, 두 귀를 가지고도 귀머거리가 되게 하며, 입이 있어도 벙어리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죽으면 그래도 조금은 북한 주민들이 나아질까 조금은 희망을 가져 보았지만 지금 북한은 어린 김정은의 나이까지 불리어 가면서 탈북자 가족들을 장악하고 색출하기 위해 수용소를 만들고 있고 탈북자를 막기 위해 전기줄과 못을 박은 판자들을 국경 연선에 묻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면 북한 주민들도 정치범 수용소와 감옥이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을까요? 그날은 얼마 멀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