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해외에 가 있던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지난날 저에게 때로는 동생 같은 친구이면서도 때로는 서로의 자식들을 사이에 두고 조금은 서운한 점이 없지 않았던 이제는 사돈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제 아들의 장모인데요. 장모가 왔으니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지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옵니다. 장모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으니 지나간 옛 얘기로 서운하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이 엄마가 속 좁은 여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왠지 아들을 뺏겼다는 또 하나의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다 그러하듯이 나는 조금 다른 가 했었는데 역시나 나에게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들 키워 장가보내면 버들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며느리에게 아들 뺏긴 것만 해도 조금 아쉬울 텐데 친구에게 내 아들을 뺏겼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서운했습니다.
장소는 광명에 있는 가마 돌솥 밥상 한정식집이라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남짓이 소요되는 거리였기에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친구이면서도 사부인이라 은근히 세련되고도 돋보이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개봉역에 도착하면 아들이 자가용으로 마중을 오기로 했었지만 천안에서 출발한 아들며느리는 주말이라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도착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늦어진다고 합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한파 추위로 인해 그날 날씨는 여느 때 없이 추웠습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볼은 칼로 에이듯이 얼어들어 옵니다. 잡으려고 하던 택시를 몇 개 놓치자 다시 한 번 역시 인제는 내 아들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마침 택시가 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마음이 좀 안쓰러웠던지 제 잔등을 쓸어 주며 자식은 딸이든 아들이든 품안에 있을 때만이 자식이지 나이가 들어 품안에서 벗어나면 각자 나름대로 본인들의 생활이 있기에 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듯 합니다. 예약 시간보다 훨씬 늦어져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식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가마 돌솥밥 한정식 음식점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점이기도 합니다. 하기에 조금은 서로 먼 거리에 있지만 제가 직접예약을 했었거든요. 육즙 가득하면서도 쫀득쫀득한 갈비찜의 참맛과 갖가지의 산나물 무침은 다른 음식점에 비교하면 조금은 특색이 있습니다. 늦은 점심이지만 오랜만에 사부인과 마주한 식사 시간의 즐거움으로 잠시 아들에 대한 서운함은 사라졌습니다.
지난날 친구와 동생 간에 조금 오해가 있었다면 비록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 눈빛으로 풀어가는 즐거운 점심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인제는 서로 자식을 나누어 가진 부모라고 생각을 하니 지난날 보다 더 가까워져 가는 듯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이 커피를 산다고 해 우리는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따듯한 커피를 손에 들고 흘러간 세월이 새삼 떠오릅니다. 비록 태어난 고향과 자라난 고장은 서로가 달라도 우리 탈북자들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 두 집 사이는 이곳 한국의 평범한 사돈 사이가 아닙니다.
죽지 않으면 산다는 오직 이한 길을 택해 어렵고 험난한 길을 목숨 걸고 가족을 이끌고 자유를 찾아 온 두 가족입니다. 사부인은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하는 캐나다와 독일을 돌아 봤지만 진정한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면서 눈에 눈물도 보입니다. 저는 사부인의 두 손을 꼭 잡고 우리 이제 엄마로서 또 부모로써 자식들의 걸림돌이 되지 말고 주춧돌이 되자고 그리고 이제는 이 좋은 곳에서 우리 인생만을 생각하며 살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 곱씹어 합니다. 워낙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부인은 왔던 김에 독산 시장에 들려 순대 감을 구입해 간다고 합니다. 북한 순대를 만들어 두 집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자고 합니다. 독산전철역에 내려 전철을 타고 오는 내내 어느 순간부터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그 엄마에게 아들을 뺏겼다는 생각이 도무지 지워 지지가 않았습니다.
비록 나이 서른이 넘은 아들이지만 지금도 꿈속에서는 어린 아들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두만강을 넘어야 한다는 근심 걱정으로 인한 악몽 속에서 헤매다 깨어나면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거든요. 나에게는 그런 소중한 아들인데, 그동안에 있어서 조금은 힘들고 어렵고 외로울 때마다 아들은 나에게 친구 같고 애인 같고 남편 같은 든든한 기둥이고 버팀돌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들은 전화로 자기가 제일 좋아 하는 굴밥을 해주어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 굴밥에 양념장을 비벼 먹으면 맛있지, 사실은 오랜만에 사돈과 함께하는 식사라 즐겁고 행복 했지만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들을 뺏겼다는 기분으로 인해 조금은 언짢았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마냥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