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갑작스레 찾아온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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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파로 인해 수도 계량기 동파와 차량 고장으로 시민들에게 연이어 피해가 일어나고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예년에 없었던 55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방송으로 오류 초등학교가 휴교라고 알리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은 이곳 한국과는 달리 아무리 추운 한파가 찾아와도 학교 휴교라는 말은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합니다. 공부가 끝나면 어린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과 거리의 눈을 치워야 합니다.

하기에 제가 이곳 한국에 와 처음으로 맞는 첫 겨울이었습니다.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에 갔었는데 도로에 밤새 펑펑 내린 눈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는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눈이 내렸습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밤이었지만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봤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인데 순간 눈이 다 녹아 버렸습니다. 마치 신기한 구경을 혼자 한 것처럼 저는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놀림거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요즘 시민들이 모자도 쓰고 마스크도 착용하고 어깨를 쭈그리고 다니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바로 평양에서 제가 흔히 보아왔던 그 모습들이랍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도 강추위가 찾아왔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이번 강추위에 죽은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춥기는 꽤 추운가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윗집의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인줄로 착각을 했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거실 창가에 세탁기를 놓아둔 공간인 베란다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도꼭지가 터져 뜨거운 물이 마치 분수처럼 뿜어 나왔습니다.

우산을 펼쳐 들고 안에 있던 짐을 꺼내 놓고는 경비실에 비상 신호를 누르고 눌렀지만 경비원 아저씨가 없었는지 응답이 없었습니다. 다급한 저는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관리실에서는 저희 집처럼 수도꼭지가 터진 집들도 있고 아파트 계량기가 얼어 터져 조금 바쁘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방안에서 빙빙 돌면서 저는 마음이 조급해져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하면서 난리를 부렸습니다.

한 5분이 지났는데 다행히도 수리공이 와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제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물에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의 집과 같은 문제는 세탁기와 연결돼 있는 연결 부위가 얼어 터진 것이기에 알아서 고쳐야 하는데 수리 기사는 잠깐 사이에 아무 소리 없이 수리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도꼭지는 수리가 됐고 기사 아저씨는 또 다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소파에 잠시 맥 놓고 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저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다행이라고 하면서 걱정이 됐다고 합니다.

관리실에 전화 한 통 하면 될 문제를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나머지 여기저기 전화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다행이라면서 딸은 전화를 끊었습니다. 베란다 청소를 하는 동안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원래 평양은 이곳 서울보다 눈도 더 많이 더 자주 내리고 날씨는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함북도 같은 경우에는 영하 35도까지 떨어집니다. 전력 사정으로 아침 1시간, 저녁 1시간, 점심 1시간 이렇게 시간제로 물을 공급해 줍니다. 여름에는 별 탈이 없지만 겨울에는 수도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받아쓰고 점심에 물을 받으려면 수도꼭지가 꽁꽁 얼어 물을 받을 수가 없어 하루 세 번씩 끓인 물을 부어서 녹여야 합니다.

물을 부어도 인차(곧)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얼음이 녹는 시간이 지나야 물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경우도 많았고 그로 인한 고통 역시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하기에 겨울에는 웬만해서는 빨래를 할 수 없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한 번은 끓는 물을 부어 놓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졸졸 흘러나오던 물줄기가 커졌습니다. 그만 수도꼭지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부엌 바닥에는 물이 차고 아궁이까지 물이 차 구멍탄 불이 죽었습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추운 겨울에 젖은 옷도 바꿔 입지 못한 채 관리반으로 뛰어 갔습니다. 당시 관리반장은 안타까워하는 제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은 사람이 없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대처했습니다.

저는 제 집 아니라고 책임 없는 발언을 하느냐며 막무가내로 덤벼들었습니다. 1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관리기사가 겨우 물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궁이가 마르지 않아 추운 1월에 며칠 동안 아궁이에 불을 때지 못한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올겨울에는 남한에서도 수도꼭지가 얼어 터지는 조금 황당한 일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아무리 55년 만에 찾아온 한파라도 훈훈합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한파가 몰아치는 이 겨울, 집 없는 많은 꽃제비들에게 죽음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프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