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훈련에 내몰리는 북 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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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조금 늦은 식사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북한 여군들이 방사포 실탄 사격을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순간 손에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뽀얀 연기와 먼지 속에서 실탄 사격을 하는 단발머리 여성 군인들의 모습에서 지나간 추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함경남도 선덕에 있는 공군사령부 실탄사격장에서였습니다. 제일 추운 2월이었습니다. 3.7mm 상신고사포와 14.5mm 고사총과 배합되어 있는 우리 중대가 사격 경기에 참가하도록 선발이 되었거든요. 열차에 견인을 하고 황해도를 출발해 일주일 만에 선덕역에 도착했습니다. 바닷가라 추위는 더 말할 수 없었고 입이 얼어붙어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해바닷가 실탄 사격장에 도착해 천막을 쳤고 모래를 파서 임시 진지를 만들었고 포와 고사총 전투준비를 마치고 보니 어느덧 밤 10시였습니다. 온몸이 얼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몸을 녹일 장소 하나 없었고 들려오는 것은 철썩철썩 바닷물 소리뿐이었습니다. 대원들이 한 명 두 명 주저 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어죽을 것만 같은 두려운 생각에 추위와 피곤에 몰려 졸고 있는 군인들을 깨웠습니다.

몇몇 구 대원들과 함께 저는 삽과 곡괭이를 손에 들고 천막 밑바닥을 파기 시작했고 대원들에게는 넓적한 돌을 구해오게 했습니다. 고생 끝에 제법 온돌방이 되었습니다. 식당 까지 5개 천막 온돌을 만들다보니 어느덧 해가 떴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답고 웅장한 동해 바닷가 해돋이에 피곤이 사라졌지만 대원들을 위해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잠깐 한순간 이었습니다.

동해 바닷가에서 실탄 사격 경기를 위해 보낸 그 때의 2월 한 달 동안의 생활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원시시대 생활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먹을 물이 없었고 빨래 할 물도 부족했습니다. 5m 되는 구덩이를 팠습니다. 구덩이에 고인 물로 밥 지어 먹고 빨래하고 세수하고 생활했습니다.

드디어 실탄 사격하는 날이 왔습니다. 사격 목표는 모형 비행기 사격이었는데 주간 야간 모두 우수한 성적을 맞았습니다. 중대 군인들은 환호성 소리와 함께 서로가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부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도 기뻤었는데 그 기쁨도 잠시 잠깐이었습니다. 대원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돌아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너무도 깜짝 놀랐거든요.

한 달 내내 한 번도 빨아 입지 못한 군복은 그야말로 정규 군인인지 아님 돌격대원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초라했고 얼굴은 강한 추위에 얼어 시퍼렇게 변해 있었고 금방 터질 것 같은 물방울이 생겨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 없이 시내에 있는 목욕탕으로 중대를 인솔했습니다.

사실 제가 했던 군복무 생활과 지금 여군 생활과 비교해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울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 여군 생활 실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규군 120만 명, 붉은 청년 근위대와 노동 적위대, 그리고 교도대 등 예비역까지 모두 합쳐 8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북한 주민 3분의 1일 군인이라면 그 가운데 여군이 3분의 1을 차지하거든요. 여성 군복무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입대 하면 병사는 24살이 되면 제대 되지만 장교는 27살이 되면 제대 되거든요. 토요일 마다 25kg되는 전투 비상용 배낭과 함께 4.5kg되는 자동 보총을 착용하고 100리 행군을 해야 합니다.

동기 훈련이 한창인 지금 이 추운 겨울에도 아침 6시에 기상해 병실을 나오면 저녁 취침시간인 9시가 돼야 병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먼 훗날 알게 되었지만 대원 중 한 명은 얼었던 발가락이 병이 들어 발목까지 자른 장애가 되었다고 합니다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제 엄지발가락 역시 점점 감각을 잃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아픔의 통증으로 잠을 설칠 때가 있습니다.

례성강 물을 등짐으로 길어다 먹고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도 도끼를 들고 두꺼운 례성강의 얼음을 까고 빨래하고 머리를 감아야 했던 군 생활, 가뭄으로 갈라 터진 논밭처럼 손등이 갈라 터져 피가 나와도 손에 바를 크림 한번 제대로 발라 보지 못하며 군 생활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