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의 추억

민속명절 설을 맞아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한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속명절 설을 맞아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한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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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설 명절이었습니다. 입춘에 쏟아진 큰 눈이 50년 만에 오는 강추위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겨울이 그리 만만하게 가지는 않을 모양이기도 합니다만 온 강산이 목화솜처럼 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서인지 더더욱 설 명절 기분이 듭니다.

설 명절은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처럼 기쁜 설 명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북한당국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어 남한과 국제사회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설날이 오면 며칠 전부터 시민들은 시골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을 생각과 부모님들에게 드릴 선물준비로 누구나 마음이 설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비행기를 타거나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설 연휴 귀성길에 오른 그들이 부러웠고 또 설 준비로 피곤해 하는 주부들을 보면 고향 생각과 부모님 생각으로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도 그들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설 명절과 생일, 추석 명절이면 시집간 딸, 사위들과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손자들이 찾아와 흥성거려 때로는 고향 생각을 잊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설은 여느 때와 다른 아주 뜻깊은 설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 제가 이곳 대한민국에서 10번째로 맞는 설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늘 이런 말을 중 염불 외우듯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곳 한국에 와서 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부자가 됐다는 말, 그리고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복한 새 삶에 대한 말입니다. 해마다 그러하듯이 명절이면 항상 빼놓지 않고 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사위들이 저에게 주는 묵직한 용돈도 좋았지만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내 손자, 손녀들에게 건네주는 용돈과 선물은 올해 설 명절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벌써 내가 자식들에게서 용돈을 받고 손자들에게 용돈을 건네주는 나이가 된 것에 대해서는 조금 섭섭합니다만 행복하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들 마냥 생일과 명절을 은근히 기다리기도 하지 않았나 생각하면 혼자 웃을 때도 있습니다. 이번 설 명절은 사돈들과 함께 보냈거든요. 며칠 전 저는 작은 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날씨도 갑자기 추워졌고, 명절 연휴 기간이 여느 때보다도 짧은데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힘들게 오느라 고생하지 말고 내가 평택으로 가서 명절을 보내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큰딸과 작은딸은 물론 두 사위들이 더욱 기뻐했습니다. 하여 주말 아들과 함께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섰습니다. 많은 차들로 인해 길은 조금 막혀 1시간이면 갈 거리를 3시간이 지나서야 평택에 갈 수 있었습니다. 운전하는 아들은 조금 짜증을 냈지만 운전을 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마냥 대견하고 즐거웠습니다.

가다가는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마셨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 언제인가는 해보고 싶었던 설 연휴 나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화성 휴게소에서 잠깐 지나간 고향에서의 있었던 일에 대해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그 해도 설 명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이라고 공급받은 돼지고기 1kg과 소위 고급술이라고 하는 태평술 한 병을 들고 시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만경대 구역으로 갔습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막내아들은 포대기 속에 업고 둘째 딸애는 남편이 안고 큰딸의 손목을 잡고 궤도 전차를 타려고 시내로 나섰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전차를 타기가 힘들었습니다.

두 딸에게 저는 예쁘게 화장도 해주었지만 아이들은 손발이 시려 그만 버스 정류장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시댁에 도착했는데 화장한 두 딸의 얼굴은 그만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점심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버스와 궤도 전차를 타기가 너무 힘들어 만경대 구역에서 대동교를 건너 동평양까지 걸어 온 적이 있었는데 포대기 속에 있는 아기의 손발이 빨갛게 얼었습니다.

옛 생각을 하다 운전으로 조금 피곤해 하는 아들에게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고향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 하는 소리였지만 제 마음은 아팠습니다.

지난날에는 설 명절이 되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생각으로 때로는 설레기도 했고 부모님이 조금씩 주는 설 세뱃돈을 받는 재미로 명절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걱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명절 음식을 먹고 있는데 굳이 특별한 음식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살이 찔까봐 높은 열량 걱정도 빼놓지 않습니다.

올해 설 명절에 온 식구가 큰상에 마주 앉아 웃고 떠들며 먹는 북한식 만두국은 정말 별미였습니다. 욕심이 많은 작은 손자는 큰 손녀의 만두를 빼앗아 달라고 해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안사돈은 처음 먹어 보는 고기 만두국이지만 너무 맛있다고 한 그릇을 더 먹었습니다.

저는 웃고 떠들며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잠깐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한숨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