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저는 가족과 함께 여의도 63빌딩을 다녀왔습니다. 63빌딩은 1985년 건설 당시 높이 249미터, 63층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이 63빌딩은 우리 가족이 이곳 한국에서 맨 처음으로 가본 아주 뜻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오후 12시가 조금 지나 우리 가족은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으로 가는 도중 딸이 국회 의사당이 너무도 공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고 열심히 말하자, 운전하던 사위는 63빌딩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재롱을 부리는 손자들과 한참을 웃고 떠들던 저는 한마디 참견했습니다. 고향이 평양인 우리들도 사실은 평양에서 태를 묻고 살아 왔지만 어쩌다가 한 번 견학으로 평양에 다녀간 지방 사람들보다도 때로는 더 모르는 곳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부모님과 친척이 있어도 자유롭게 평양을 다녀 갈 수 없는 지방 사람들은 일생에 한두 번 겨우 평양 견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신기하게 찾아다니며 구경을 하건만 우리처럼 평양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사 외에는 평소 다니는 길 말고 함부로 다닐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제 말에 궁금증이 생긴 사위는 여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주말이면 가족과 유명한 곳에 관광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는데 북한 사람들은 주말에 가족이 무엇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양은 내 나이 반생을 살아온 고향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은 어린 시절 외에는 별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 슬하에 딸 많은 집 둘째 딸로 태어나 응석도 부리고 꿈과 포부를 가지고 천진난만했던 유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친구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풍족한 생활 속에서 자랐지만 고작 부모님과 함께 가 본 곳은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만경대 초가집 외에는 기억에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렸을 때에는 별로 유희장이나 동물원도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결혼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김밥과 떡, 국수로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해가지고 대성산 유희장과 동물원을 몇 년에 한두 번 다녀온 기억, 그리고 대동강에서 우리 아이들과 큰 마음먹고 보트를 한 번 타 본 기억 외에는 추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곳 대한민국에 온 저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경치 좋은 산으로 등산도 갈 수 있었고, 넓고 시원한 바닷가도 가 볼 수 있었고, 무더운 여름에는 물 좋고 산세 좋은 계곡을 찾기도 하고, 철따라 맛있는 별미도 먹으러 갈 수 있고, 오늘처럼 이렇게 시간을 만들어 63빌딩도 가볼 수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겁다고 덧붙였습니다.
작은 사위는 지난해 봄에 저와 함께 서울대공원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 다 보니 자주 이런 기회를 가지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장모님이 가보시고 싶은 곳이 있으면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선택한 곳이 63빌딩 수족관이었습니다. 이곳 수족관은 우리 가족이 한국에 처음 와서 하나원으로 들어가기 전 제일 먼저 가 본 곳이기도 합니다.
어느덧 수족관에 도착한 우리는 표를 뽑고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지만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많았고 중국관광객들과 일본 관광객들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순서가 되어 표를 끊고 들어갔습니다. 맨 처음으로 뚱뚱한 펭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모차 안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던 3살짜리 손자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깨어나 고사리 같은 작은 두 손으로 두 눈을 비비며 펭귄을 보고는 좋아라 했습니다.
손녀와 손자는 서로 손을 꼭 잡고 펭귄을 만져 보기도 했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정신없이 막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을 따라가 보니 알록달록 예쁜 고기, 열대어를 가리키며 '니모'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리둥절해 있으니 딸애가 만화 영화에 나오는 물고기 이름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3주 됐다는 물개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물개가 갓 태어나 북극곰에게 엉덩이가 물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들은 적이 있다면서 가족들에게 마치 해설원이라도 되듯이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시간이 되어 물개들이 재주를 넘는 물개 쇼도 보았습니다. 참 웃기는 것은 제가 마치 두 손자들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기분으로 그 어린 꼬마들과 함께 수족관을 누비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저는 출입구로 나오면서 손자들에게 선물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손자는 이것저것 만져 보고 구경하더니 자기보다도 훨씬 큰 펭귄 인형을 하나 들고 나오더니 뭐가 아쉬운지 다시 들어갔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펭귄을 그 자리에 놓고는 고래상어를 비롯한 갖가지 물고기형태가 들어있는 크고 둥근 통을 들고 나오더니 능청스럽게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할머니 저거야' 하고 제 손목을 끌었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던 관리원들과 관광객들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저는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 계산했습니다. 어느덧 관람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에는 함박눈이 쌓여 마치 흰옷을 입은 듯 했습니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 펄쩍펄쩍 뛴다더니 손녀와 손자는 눈을 보더니 너무 좋아 콩콩 뛰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사람을 빚는다고 난리였습니다. 제 부모들은 손발이 얼고 춥다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 할미도 눈사람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손자, 손녀들을 귀엽고 너무 잘 생겼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콩 꼬투리만한 내 강아지들,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귀한 금쪽같은 내 새끼들, 북한에서는 영화나 한 장의 화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이 현실이 된 저는 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노량진 수산 시장에 들러 제일 큰 게 3마리와 새우 2kg을 구입해 집으로 왔습니다. 푸짐하고 행복한 저녁 식사시간, 표현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행복하고 즐겁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또 하나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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