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정원대보름날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전인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을 이용해 대형마트를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갖가지 나물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취나물과 고사리, 무시래기, 곤드레, 고구마순 등 각종 나물과 함께 땅콩, 잣, 호두, 밤을 구입했습니다. 찰조에 찰수수, 녹두, 강낭콩, 쥐눈이콩에 밤과 잣을 섞어 오곡밥에 갖가지 나물을 볶아 밥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조금 늦은 아침식사 시간이었지만 맛있게 먹어 주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괜스레 행복합니다. 아침식사에 귀밝이술이 없으면 정월대보름이 아니죠. 강낭콩을 골라내는 녀석, 잣을 골라내는 녀석, 쥐눈이콩을 골라내는 손자녀석들이었지만 모두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개구쟁이들이었습니다. 아침 설거지를 마친 저는 미리 구입해 놓은 땅콩과 호두를 내 놓았습니다.
남편은 아침부터 손자들에게 작은 망치를 들고 호두를 까주느라 분주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저는 윷놀이판을 꺼내 들었습니다. 식구 별로 편을 만들다 보내 결국은 3패가 되었습니다. 맨 처음 제 차례였습니다. 딸들이 한 목소리로 응원하느라 '훗돌 훗돌' 합니다. 정말 훗돌이 나왔네요.
사위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위는 말을 높이 던지는 순간 저는 '쓩' 하고 외쳤습니다. 모가 나왔습니다. 손자 녀석들은 제 아빠가 모가 나왔다고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좋아합니다. 이기는 편이 저녁 식사를 사기로 했거든요.
행복하고 즐거움 속에서 저는 지나간 세월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은 우리 형제들과 함께 윷놀이를 자주 했거든요.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시는 아버님을 대신해 어머님은 백지에 윷놀이판을 그려놓고 우리 7남매와 함께 윷놀이를 배워주기도 하고 때로는 어떻게 하면 빨리 나갈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진압할 수 있으며 남의 말을 많이 잡는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을 빨리 나가는 것도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라고 하시며 말 쓰는 법도 직접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윷놀이는 말을 잘 던져 잘 나와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 쓰는 법도 중요합니다. 하기에 저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숙제 검열 이후시간에는 꼭 30분 정도 윷놀이로 시간을 보냈거든요. 말을 던질 때마다 '돌 개 걸 쓩 모' 하는 제 목소리를 들으며 작은 딸은 "아직 우리 엄마 살아 있었네" 합니다. 사위도 남편도 온 가족이 큰 목소리로 웃었습니다.
정월대보름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오락을 하노라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보니 벌써 어느덧 시간이 지나 둥근 보름달이 뗬습니다. 둥글고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모두 각자 제 소원을 빌기로 했습니다. 추위에 손자들의 얼굴은 빨개졌습니다.
작은 고사리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있는 손자녀석들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15년 전 이곳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는 식구가 4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사실 저는 아빠 없는 우리 아이들, 10대에 헤어져 각자 나름대로 살아온 상처 많은 우리 아이들, 같은 민족이고 같은 한국말을 쓰고 있지만 때로는 뜻과 표현이 서로 다른 이곳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기에, 내 자녀들이었기에 오늘날 중국집 음식점 사장이 되었고 또 자녀들을 둔 엄마로 한 남편의 아내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이곳 남한의 그 어느 엄마들보다도 더 강한 엄마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든든한 사위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내 강아지들, 웬만한 그 어느 가족들 부럽지 않을 만큼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식당 사장님께서는 한껏 웃는 우리가족들에게 "조금 조용히 해달라"고 했습니다. 정월대보름 달을 보니 마치 그 안에 부모님의 환한 얼굴이 우리 가족을 대견하게 내려다보고 계시는 듯 하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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