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도 수차례씩 저는 은행을 방문합니다. 은행에 갈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나 은행을 자유롭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입니다.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현금을 가정에 두지 않고 내가 맡기고 싶을 때 자유롭게 맡길 수 있는 동시에 액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찾아 쓸 수가 있어 사고도 미리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래 금액에 이자까지 받을 수가 있답니다.
며칠 전에 저는 모 은행으로부터 한통의 문자와 전화를 받게 됐습니다. 해마다 꼭 이날이 되면 영락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이건만 또 저는 이날을 잊지 않고 은근히 기다리게도 된답니다. 몇 년째 반복되는 같은 말이지만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에 저는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고 답변을 주곤 합니다.
무슨 기쁜 날이냐고요? 은행에 예금한 만기 날짜이거든요! 때로는 나 자신도 모르고 잊고 넘어 갈 때가 한두 번 있기도 하고 바삐 다니다보면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비록 내 개인의 작은 돈이지만 이 날을 잊지 않고 은행의 담당 일꾼은 3일 전에 벌써 문자와 전화로 고객님의 예금이 만기되었다고 알려주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꼭 빼놓지 않고 해주곤 합니다.
세상에 내 돈을 맡겨 놓고 이자까지 붙여 주면서도 빼놓지 않는 축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저는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은행을 찾은 저는 다시 재계약을 하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해보았습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은행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 화재나 풍수해를 비롯한 각종 재난에 대비해 저축이 필요하고, 또 장래와 미래에 목돈을 쓸 수 있도록 저축을 하거나 노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위해 저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은행에 돈을 저축하면 은행은 그 돈을 기업에 빌려 주고 기업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해 번 돈으로 은행에 이자와 함께 갚고, 저는 다시 원금과 이자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한 돈으로 은행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나라의 산업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도 은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은행을 잘 이용할 수도 없거니와 이용을 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맡긴 돈을 자유롭게 찾아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민반 주민들 가구당 한 달 경제 과제 중 저축 계획도 있습니다. 인민반장들은 맡은 가구별로 월급 받는 날을 기록하고 있다가 월급 받는 날 저녁이면 집마다 문을 두드려 저금 계획을 하라고 독촉합니다.
말로는 받은 월급을 은행에 저축했다가 3일 지난 후에 다시 찾아 쓰라고 선전을 하고 있지만 사실 맡긴 돈을 찾아 쓰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면 나라의 경제가 안 돌아가기 때문에 은행 금고도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인민반장을 하면서 주민들과 혹은 은행 관리자들과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우선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에 근로자들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기에 은행에 저축할 돈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적으로나 행정으로나 저축 과제만 하달하니 할 수 없이 인민 반장들은 집집마다 구걸 식으로 돈을 받아 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의 제 한달 월급은 30원이었습니다. 시장에서 겨우 풋고추 1kg 구입 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남편 월급과 제 월급을 합쳐야 시장에서 흰쌀 1kg을 겨우 구입 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거의 반생을 살아왔지만 은행에 돈을 저축해 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1990년 초에 조금 저축해 놓은 돈 마저 갑자기 진행된 화폐개혁 때문에 국고에 회수됐습니다. 화폐개혁 원칙에 가정마다 300원까지만 교환해 준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저는 저축할 돈도 크게 없었지만 은행에 맡기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요즘 북한 주민들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개인들이 국가 모르게 이자 놀음을 한다고 합니다. 개인들에게 이자를 주며 돈을 빌려 주기도 하고 탈북자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을 위험하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국경에서 돈을 얼마 보냈다는 확인을 한 후 례를 들면 개성 같은 곳에 도착하여 돈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개인들이 은행처럼 돈 운반도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하루 일당을 받아도 흰쌀 20kg 포대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5인 식구가 한 달을 먹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한 달 수입으로 시장에서 구입한 량으로는 5인 가족이 하루는커녕 한 끼조차 먹기 어려웠습니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현실입니다.
저는 이곳 한국에 온 첫날부터 매달 월급을 받으면 쓰고 나머지는 무조건 은행에 저축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이렇게 또 은행과 자주 거래를 하게 되면 본인의 신용도도 높아지는 것은 물론 은행에 맡기면 우선 안정이 되고 이자도 받을 수 있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랍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인민반 세대수만큼의 많은 통장을 관리해 왔지만 이자는커녕 본인이 맡긴 돈도 제대로 찾아 쓸 수가 없어 항상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은행에 왕래를 해도 또 많은 돈을 저축해도 내 재산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을 일도 없고 또 누구를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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