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KBS 방송의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을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저는 '6시 내 고향'을 보기 위해 조카와 함께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마침 '6시 내 고향'에서는 산천어 매운탕과 먹음직스럽고 빛깔 고운 영덕게찜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군침을 흘리던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요즘 같이 추웠다 포근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엔 영양 보충이 중요하기도 하고, 또 맛있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식욕도 생겼던 터라 저와 조카는 다음 날 함께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습니다. 전철에서 내려 시장으로 들어가던 조카의 눈은 커졌고, 몸은 이미 굳어진 채 입에서는 감탄사가 연달아 나왔습니다. 횟감을 파는 사람들은 싸게 주겠으니 자기 것을 사달라고 우리 앞을 막았습니다. 조카는 저에게 조금 부담스럽다고 귓속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가게 주인 양반은 부담스럽지 않게 해주겠다며 발목을 잡았습니다.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참돔을 보는 순간, 전날 저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매운탕 생각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저는 인심 한번 후하게 쓴다는 마음으로 참돔을 구입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포장하는 동안 돈을 계산하고 있는데 조카의 눈길은 딴 곳에 쏠려 있었습니다. 조카는 엉기적엉기적 살아 움직이는 킹크랩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으면...' 하는 생각에 저는 제일 큰 킹크랩을 손으로 가리키며 함께 사겠다고 했습니다. 4kg짜리 킹크랩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조카의 모습에서 저는 고향에 있는 언니가 떠올라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조카와 함께 전철을 타고 오면서 저는 둘이 먹기엔 조금 아쉬워 친구 영숙이와 영희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일이 있으니 퇴근 후에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집에 온 저는 참돔으로 얼큰한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그리고 킹크랩을 쪘습니다. 밥상은 보기만 해도 푸짐했고, 고급스러웠습니다. 맛있게 먹는 조카와 친구들을 보니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친구들은 음식을 자주 하지 않는 제게 이런 음식 솜씨가 있었냐면서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하다고 자꾸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이 안 들어가는 학원이 있다고, 그건 나만의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카는 본격적으로 두 손을 걷어 올리고 킹크랩의 큰 다리를 발라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조카는 고향에서 꽃게나 털게는 먹어 보았어도 이렇게 크고 살이 많은 게는 처음 보았다면서 상상도 해보지 못한 맛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다고 했습니다.
조카와 친구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며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저에게 친구들은 먹는 중에도 계속해서 돈이 안 들어가는 학원을 자기들도 소개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저는 '6시 내 고향' 이라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크게 웃으며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하다면서 앞 다투어 자기 고향 별맛 자랑을 했습니다.
함북도 무산이 고향인 영숙이는 언 감자떡과 국수가 그 때엔 별맛이었는데 지금은 아마도 입맛이 변해 맛이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영희는 한국 사람들은 못살았던 지난날을 추억하며 보리밥과 잡곡밥을 별미로 먹듯이 우리도 지금 고향에 가면 모든 것이 열악해 못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언 감자떡과 국수를 먹어볼 수는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영희는 눈처럼 하얗고 뽀드득거리는 감자 녹말가루에 백반을 넣어 반죽하여 만들어 먹었던 감자 녹말국수가 생각날 때마다 함흥냉면집을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쟁반국수를 먹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평양 옥류관과 청류관에 아침 일찍 개구쟁이들을 데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때 이야기를 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서 표를 끊어 기다리다가 배가 고프다 못해 맥이 빠지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야 그 쟁반국수 한 그릇을 타서 순식간에 먹어치우던 때가 생각난다고 말을 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던 5월에는 모란봉 중턱에 있는 모란각에 올라가 쟁반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내려와 모란봉 공원에 아름답게 핀 철쭉과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나무를 바라보면 비록 먹을 수 없는 살구였지만 마음이 상쾌하고 그 순간만은 참 즐거웠던 기억도 친구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정신없이 게를 먹고 있는 줄 알았는데 먹는 중에도 우리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는지 조카도 한마디 했습니다. 지금은 옥류관 쟁반국수 보다 개인들이 음식점을 차려 놓고 만들어 파는 국수가 더 맛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 덕에 예정에도 없던 맛있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내 고향 평양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별미들이 '6시 내 고향'에 소개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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