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앞에서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 깜짝 놀랐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알 수 없는 연약한 두 여성들에게 피살되는 김정남의 현실 그대로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손쓸 새도 없는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본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복형 김정남을 5년 전부터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어쩌면 못되어먹은 핏줄은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북한 당국은 권력을 위해서는 가족도 친척도 형제도 서슴없이 죽이는 것이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7살짜리 어린이가 연못에 빠져 살려 달라고 애타게 찾는 친동생을 빤히 보면서도 경호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권력을 위해 당의 곁가지를 모조리 잘라 버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이복동생을 해외로 내보냈고,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에도 김정일은 해외에 가 있는 이복동생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얼마 전에 김정은은 권력을 위해 자기 고모부를 공개총살 했고 이제는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해외에 있는 이복형을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공항에서 독살함으로서 세계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누구 차례가 될 지 많은 의문이 듭니다만, 제가 이곳 한국으로 오기 전 평양에서는 한국에 오신 황장엽 선생님을 두고 계급적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등, 남조선으로 도망간 황장엽의 목을 따왔다는 등 별의별 강연 자료를 만들어 유포했거든요.
사실인 줄 알았던 저는 북한을 탈북해 중국연변에 도착해 라디오 방송에서 황장엽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이곳 한국에서 이한영의 죽음을 두고 말로만 들었던 얘기가 현실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하기야 북한 사회에서 50년을 살아오면서 죄 없이 많은 주민들이 공개 총살당하고 목매달아 교수형에 처해지고 때려죽이는 현실을 수 없이 많이 보고 살아 왔지만도 권력에 눈이 멀어 이복형제와 고모부를 죽이는 현실은 아마도 북한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죄 아닌 죄가 되어 고향 평양에서 통치자의 아들로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돌이 하다가 끝내 이복동생에게 피살되는 김정남. 죽어서도 가족에게 갈 수 없는 생각을 해보니 너무도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참혹한 비극적인 현실이 언제 사라지겠는지가 의심스럽네요.
세월이 갈수록 북한 당국이 세계에서 둘도 없는 3대 세습의 독재라는 것을 알면 알수록 내가 나서 자란 내 고향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두렵습니다. 요즘친구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돈을 들고 북한으로 돌아오면 용서해준다는 말, 중국 국적을 쥐고 북한과 무역을 함께 하자는 등의 얘기들이 가족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스스럼없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과연 돈을 가지고 가면 북한 당국이 용서해 줄까요? 과연 중국 국적을 가지고 북한 당국과 무역을 함께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 말일까요? 언제 개죽음이 될지 모를 소리입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가족들이 죽음에 내몰릴까봐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탈북자들이 어리석은 걸로 알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당국이 참 한심하네요.
이곳 한국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북한에서 나서 자랐다는 이유 하나로 김씨 일가의 주민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죽음을 당해도 당과 조국을 배반한 나는 응당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기에 북한 당국은 시퍼런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공항에서 김정남을 피살한 모든 증거물이 확증되었음에도 저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담벼락도 문이라고 뻔뻔하게 내밀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어떻게 하면 배고픔에 시달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올바른 정치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을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고향을 떠나 이곳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과 주민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북한 당국은 하루빨리 무너져야 합니다. 인정도 피도 없는 북한 당국에 의해 다시는 김정남과 같은 제 3의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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