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3월입니다. 해마다 3월이면 또 가장 잊혀지지 않는 큰 대사 중에 대사가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내 고향 사람들은 많이 궁금해 하시겠죠? 우리 학생들이 입학하는 날이거든요. 손녀 딸애가 지난해에 1학년 첫 입학하던 것 같았는데, 벌써 2학년에 진학을 하게 되는 아주 뜻깊은 달이 아닌가 합니다.
봄방학 내내 2학년생이 되었다고 또 이제는 제 밑에 많은 동생들이 생겼다고 늘 입버릇처럼 자랑이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들뜬 기분으로 잠도 설쳤답니다. 2일 개학식 날 저는 손녀의 손목을 잡고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린 손녀딸애의 친구들이 달려와 손목을 잡고 교실로 들어갑니다.
금방 학교 정문으로 들어설 때 까지만도 마치 내 자신이 학교에 입학하는 기분이었습니다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교실로 들어가는 손녀의 등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 제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누구에게 뭔가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습니다. 멍하니 한참을 정문에 서있었습니다.
손녀딸애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내가 저 애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서운한 생각이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작은 손녀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습니다. 잠시 큰 손녀 딸애로 조금 서운했던 생각도 뒤로 물러갔습니다. 아마 우리 할머니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심정이겠죠?
개학하기 며칠 전 저는 손녀의 개학 준비에 대해 물은 적 있습니다. 특별히 없다고 합니다. 손녀의 개학준비를 생각하면서 저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지난날의 추억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세 아이들 개학준비를 하노라면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우선 우리 아이들이 공부해야할 책상부터 우리 학부모들이 관리해야 하기에 책상과 의자를 비눗물로 닦고 교실 청소도 우리 학부모들이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땔감 문제였습니다. 석탄을 한차 가량 바쳐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휘발유나 디젤유 50kg을 내야 하거든요. 석탄과 휘발유 구입 문제 때문에 때로는 남편과 싸우기도 하고 며칠씩 말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들의 심정은 누구나 다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집 애들보다도 더 좋은 교육과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딸부자 집에서 나서 자란 저는 아들에 대한 애착심이 누구보다도 강했습니다. 아들만은 부족함이 없이 내세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머지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남편에게 석탄 한차를 구입해 달라는 요구를 했거든요.
당시 남편은 정무원 기동대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갑자기 화를 내더니 집을 휙 나갔습니다. 그 뒤 2일 동안 아무 소식없이 외박을 했습니다. 남편이 한없이 얄미웠지만 저는 회사에 찾아 가보니 남편은 보일러 굴뚝에서 나오는 재탄을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당시 누구에게나 싫은 소리하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혼자서 새까만 얼굴로 낮에는 일에 충실하고 저녁에는 짬짬이 아들 학교에 싫어갈 재탄을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초췌한 모습에서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운전기사들에게 한마디 부탁을 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또 대기업이라 당 비서에게 부탁만 해도 얼마든지 해 결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길로 남편 공장 당 비서를 찾아 들어 갔습니다.
당 비서에게서 석탄 한 차를 아들 학교에 실어다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저는 집으로 돌아 왔거든요. 그 때부터 남편 기업소에서는 저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3일간의 외박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은 이건 남자보다 여자 치마 자락이 더 세니 직장 동료들 보기가 민망스럽다고 말합니다.
남편의 이런 핀잔에도 제 마음은 기뻤습니다. 다음날 저는 석탄 3톤을 실어다가 작은딸 이름과 아들의 이름으로 학교에 바쳤거든요.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무료교육, 의무교육이라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너무도 요구하는 것이 많아 한창 학교 책상에 앉아 공부 할 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습니다.
책가방 대신 작은 고사리 손에 빗자루와 바께쯔를 들고 기차역을 전전하면서 석탄과 시멘트를 쓸어 장마당에 내다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어린 학생들도 우리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처럼 세상에 부럼 없이 좋은 책가방을 메고 좋은 책상에 앉아서 좋은 종이에 글을 쓰게 될 그날을 그려 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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