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행복한 북한 여성'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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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바로 3월 8일, 국제부녀절이었습니다. 저는 3.8 국제부녀절을 맞으며 지난 4일 국군방송 프렌즈 FM의 '북한의 오늘'이라는 프로그램에 조카와 함께 출연해 북한 여성들의 생활과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여년 만에 만난 조카와 이모가 출연해 20여 년 전의 북한 여성들의 생활과 오늘날 북한 여성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저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두 번이나 변할 수 있는 긴 세월이었지만, 북한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정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북한에서는 '국제 부녀절' 또는 '3.8절'이라고 부릅니다. 공식 기념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공급이나 휴식은 없습니다. 조카는 대한민국에 와서 자리를 잡은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조카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지난 날 고향에서 3.8절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 주던 남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북한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열악했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한순간이나마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고, 가부장제가 심한 북한에서는 오래전에 남녀평등권의 날도 정하고, 우리 여성들도 나라의 당당한 주인이 되고 남자들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 여성들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준다고 하면서 평양시에서는 구역마다 김치 공장도 건설했고, 동 마다 밥 공장도 건설했습니다. 또, '여성은 꽃'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가정과 일터에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런 것만으로도 진짜 북한 여성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성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야 저는 진정으로 행복한 여성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제 꿈은 소박했습니다. 세 남매를 둔 엄마로서, 또 한 남편의 아내로서 아침저녁 식사 시간이면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푸짐한 밥상을 차려 놓으면 남편과 아들, 딸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상에 둘러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북에서 살 때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이 소박한 꿈을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야 이루게 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한국에 온 뒤 서울에 집을 배정받고 시장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10월이었지만 빛깔 고운 과일과 채소, 그리고 각종 고기와 수산물이 많았습니다. 북한에서는 먹어 보기 힘들었던 소고기와 여러 가지 남방 과일을 사서 집에 도착한 저는 앞치마를 두르고 제법 칼도마 소리를 내 가면서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는 제 모습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으로 앞치마를 두른 엄마의 모습이 그럴듯하다며 '우와!' 하고 멋있다고 난리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제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 한 끼 먹으면 다음 끼니 걱정으로 뜬 눈으로 밤을 새울 때가 한두 날이 아니었고, 추운 겨울이면 추워서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식량은 고사하고 먹을 물조차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아 양동이를 들고 아침 일찍부터 남의 집 문을 두드려야 했고, 추운 겨울날 얼음장 같은 방안에서 있는 옷과 이불을 모두 덥고 자리에 누워도 너무 추워 잠 못 드는 아이들의 손발을 입김으로 녹여 주던 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떠나온 지 제법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북한 여성들은 제가 겪었던 이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식량난이 더 심각해지면서 북한 여성들이 집안일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장마당에서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하루 한 끼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간혹 단속에 걸려 팔던 물건을 모두 뺏길 때 반항이라도 하면 인간 이하의 멸시와 구박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또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금도 북한 여성들은 스스로 중국으로 팔려가기를 원하고 있으며, 심지어 여자 아이를 낳으면 달러가 생겼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모유 수유를 주로 하는 북한에서는 산모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갓난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사망하는 비율도 높다고 합니다. 150일 산전산후 휴가 중에도 여성들은 산후조리 대신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장이나 지방으로 다니다 보니 모두가 건강에 탈이 나서 고생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다행히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여성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대한민국에는 먹고 쓰고 입고 땔 걱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사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물론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여성들은 근심 걱정이 많지만, 적어도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멸시를 당하는 일도 없습니다. 요즘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습니다. 집에 있는 주부이든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든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자기 의사 표현을 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역시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북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항상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채 녹지 않은 땅에서 새싹을 뜯고 있을 북한 여성들과 타국으로 팔려 다니며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탈북여성들을 생각하면 제가 누리는 행복이 죄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