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의 기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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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손녀딸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부산시 영주동 코모도 호텔에서 진행되는 사단 법인 국제 불교 승가회 이사장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다녀오게 됐습니다. 친구들은 승합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해 제가 살고 있는 평택역으로 왔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저는 올해 학교에 입학한 손녀딸애와 함께 평택역으로 갔습니다.

이미 방학에 할미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러 자주 서울에 다닌 관계로 안면이 있는 할미 친구들에게 손녀는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손녀를 처음 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역시 할머니가 자랑할 만한 손녀였네요'라고 좋은 말을 많이 하면서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뿌듯하기도 했습니다만 손녀딸에게 사탕과자를 사먹으라고 용돈을 쥐여 주는 친구들 보기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손녀딸애와 함께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초고속 열차인 KTX 기차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작은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갈때는 버스로 가는 것이지만 손녀와 함께 여행가기로 했습니다. 손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 하랴, 할미와 부산 여행을 갈 준비를 하랴 매우 분주하기도 했습니다. 1박 2일이라 잠옷과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작은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챙겨 가면서 여행용 큰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공부가 끝나자마자 저는 학교에서 손녀딸을 찾아 버스를 타고 평택역으로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약 20분 가는 내내 손녀는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손녀는 버스에서 내려 제 손으로 큰 여행용 가방을 끌어 할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승합차로 갔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시간은 약 6시간이 소요되었건만 어른들도 지루한 시간에 손녀는 지루한 기색은커녕 마냥 부산가는 길에는 아주 높은 산이 많고 강도 많다는 등 쫑알쫑알 마냥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는 도중에 추풍령 휴게소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손녀는 뽀르르 달려오더니 그동안 받은 용돈을 저에게 내어주면서 상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영문을 모르고 그저 제가 먹을 간식을 사달라고 가자는 줄로만 알았는데 손녀딸애는 커피 매대로 가더니 깡통으로 파는 캔 커피를 가리키며 할미 친구들에게 대접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키는 콩꼬투리만하지만 마음은 다 자란 듯한 손녀의 모습에서 저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대견하기도 해 손녀를 덥석 안아 주었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부산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자갈치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이소' '안녕히 가이소' 인사 하며 손님들을 맞이하는 상인들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듣자 손녀 역시 텔레비전에서 듣던 말이라고 하면서 한 수 더 떠서 '억수로 좋다 아이가' 하는 흉내에 우리는 식당 안이 떠들썩하게 웃었습니다.

별미인 가자미, 고등어 등 모둠구이에 저녁 식사를 하고 사전에 예약되어 있는 호텔로 갔습니다. 호텔에 들어간 손녀딸애는 역시 이런 곳이 호텔인가고 물어 저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는 부산의 명소인 태종대와 해운대를 찾았습니다. 아침이라 바닷바람에 조금은 쌀쌀했지만 그래도 남해 바다인 부산 겨울바다 구경 또한 즐거웠습니다. 어른들 못지않게 손녀는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다고 합니다. 애늙은이라고 친구들이 놀려 대는 말에 조금은 토라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런 모습이 더욱 예뻤습니다.

다시 호텔로 들어가 우리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했습니다. 즐거운 관광과 휴식을 마치고 시간이 되어 취임식 행사장에 갔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저녁 식사를 부지런히 한 저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는 친구들과 헤어져 부산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언제 KTX 기차를 타느냐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으며 손녀딸애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열차에 올랐습니다. 초고속 열차 KTX를 타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 채 안 걸립니다.

아무리 바빠도 열차에 오르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어 제 엄마에게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주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좌석을 찾아 앉자마자 손녀는 온갖 표정을 지으며 또 한 번 사진을 찍으라고 졸라댑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음료수와 과자를 꺼내 놓았습니다. 기차 안에서 간단한 음료와 과자, 요기꺼리를 파는 매대 차가 가까이 오자 손녀는 사진을 찍으라고 또 조릅니다. 비록 8살 어린 나이이지만 손녀의 사진 찍는 자태와 분위기는 제법이었답니다.

이런 손녀의 대견한 모습을 보면서 저는 잠시 잠깐 지나온 고향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세 아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평양에서 함북도 무산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북한의 전기 기관차는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부족해 정전이 되면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서서 전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기에 평양역에서 출발해 정시에 도착하게 된다면 23시간이면 될 거리를 며칠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거든요. 도중에 우리 아이들은 감기에 걸려 고열로 인해 마음 아팠던 지나온 추억도 있고요. 매 역마다 열차가 서면 사람들은 열차 문으로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유리 한 장 제대로 없는 창문으로 오르내립니다.

저 역시 열차를 오르고 내릴 때 창문으로 두 이이를 먼저 올려 보내고 돌이 된 막내아들을 잔등에 업은 채 창문으로 열차에 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었던지, 이해하기조차 어려웠지만 그 당시에는 며칠씩 지연되는 다니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그 기차를 타지 못하면 언제 또 기차가 올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런 모습에 군인들은 저를 보고 스포츠 선수가 아닌가 하기도 했답니다. 만약 지금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면 그만큼의 용기가 생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지나온 추억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아산 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 내려 딸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손녀 딸애는 제 사촌들에게 부산 바다 구경을 했는데 너무 추워 혼났지만 비행기보다도 더 빠른 기차를 탔다고 자랑도 합니다. 다음에는 다른 손자에게도 비행기보다 빠른 KTX 기차를 타자는 약속을 뒤로 하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