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통해 대지진과 쓰나미가 강타한 일본 피해지역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자가용 승용차가 막 달리고 있는데 검푸른 바닷물이 사정없이 밀려 들어와 한순간에 삼켜 버리는 모습, 바다 위에 정박해 있던 배는 물론이고, 일반 집들, 커다란 건물들마저 한순간에 휩쓸어갔습니다. 힘없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살겠다고 지붕에 올라갔지만, 지붕과 함께 떠내려가는 모습과 고층 옥상으로 올라가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에서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는 것을 저는 이미 체험했지만, 정말 너무나 무서운 광경이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 갔을 때 저는 생전 처음 지진을 겪었습니다. 한창 행사 중이었는데 갑자기 책상이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지진이라고 생각한 저는 주석단에 앉아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에게 빨리 밖으로 나가자고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침착하게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그때서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규모 5.5의 지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만한 지진은 한 달에도 한 두 번씩 발생한다는 말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작은 지진에도 우리는 너무 놀라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를 겪은 일본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합니다.
갑자기 닥친 지진과 해일로 일본 사람들은 한순간에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을 잃었고, 형제와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피난을 반복하고 있어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도 일본인들이 침착하고 질서 정연하게 대피를 하는 모습과 모든 공급이 끊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보다 약한 이웃을 먼저 생각해 주고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일본의 이웃 나라인 대한민국이 참혹한 자연재해를 입은 일본인들을 돕고 있는 것도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대한민국의 긴급구조단이 제일 먼저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종 구호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돕기 성금을 모으고 있고, 일반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서울시내 곳곳에서 일본 돕기 특별 모금행사가 진행됐다고 합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일본 돕기 성금을 모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화면 오른쪽 위에 조그맣게 '일본 지진 피해 돕기' 또는 '일본 돕기 성금'이라는 글씨와 전화번호가 씌어 있습니다.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한 통화에 얼마씩 성금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피해 지역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텔레비전을 통해 목격하면 누구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전화 한 통화로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이런 전화 모금은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웃돕기 방법으로 정착돼 있습니다.
요즘 일본의 참상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며칠 전엔 악몽을 꾸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는데 사정없이 밀려드는 해일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나중에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떨어지는 꿈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막 울고 있는데 아들이 저를 흔들었습니다. 놀라서 깨어 보니 다행히 꿈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이 오지 않아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마침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몸 바쳐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을 필사적으로 막을 결사대들이 현장으로 투입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통을 당한 할머니들이 일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늦은 밤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며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못하고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구조작업을 펼치며 고생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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