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청소와 이불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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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꽃샘추위도 사라지고 동네 공원과 길옆에 심어 놓은 매화꽃 진달래 통통한 꽃망울은 금방이라도 필 듯합니다. 벌써 남쪽에서는 봄꽃 축제 준비가 한창이랍니다. 진달래꽃 망울을 한참이나 들어다 보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상쾌해지기도 하고 지나온 추억으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봄이 오면 우리 여성들의 손길이 분주 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겨울 내내 입었던 무거운 옷들은 뜨거운 봄 햇빛에 건조시켜 보관하고 화사하고 예쁜 봄옷으로 바꿔야 하고 또 겨울에 사용했던 이불을 빨래하는 것이거든요. 저 역시 가정주부이거든요. 지난 주말에도 겨울에 사용하던 이불을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한창 청소기를 돌리던 저는 세탁기가 빨래를 다 마쳤다는 삑삑 소리에 하던 청소를 멈추고 세탁기 문을 열고 삼퓨란을 넣으며 잠깐 지나간 고향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 고향은 평양입니다. 평양의 3월과 4월은 위생 월간입니다. 하기에 이맘때이면 위생 사업, 다시 말하면 꾸리기 사업으로 한 참 바쁜 시간이거든요. 3월과 4월안으로 '붉은기 인민반 판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큰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하기에 인민반 모든 세대가 3.16모범 가정 판정을 받아야 '붉은 기 인민반 판정'을 받을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어려웠던 문제 중 하나가 겨울옷과 이불 빨래가 문제였습니다. 비누도 중요하지만 물 걱정이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밖에 주지 않는 물을 받아 큰 솜이불 빨래를 하려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은 다 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다른 집에서 수돗물을 켜기 전에 먼저 수도를 켜야 어느 정도의 물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시간 내내 받아 놓은 물로 하루 종일 빨래를 하다 보면 손발은 물론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쑤시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솜이불이라 솜도 틀어 와야 했지만 이불 거죽(홑청) 또한 흰쌀 죽을 쑤어 빳빳하게 풀을 먹인 다음 저녁이면 남편과 마주 앉아 잡아 당겨야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주 맘에 들진 않았고 또 그렇다고 그리 싫지도 않았지만 해마다 한두 번은 남편과 마주 앉아 빳빳한 이불 거죽을 잡아 당겨야 했거든요. 갑자기 힘껏 잡아당기던 남편이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순간 저는 쾅 하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아팠지만 손뼉을 치며 웃는 남편과 애들을 보는 순간 아프다고 표현을 할 수가 없어 함께 웃고 말았습니다. 당시 4살이던 아들이 작은 고사리 손으로 내 잔등을 들어 주며 아프지 말라고 입으로 호호 불어 주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짠해 억지로 웃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며 웃다 울면 뭐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곳 한국 생활 10년이 진난 지금은 세탁기도 밥솥도 청소기, 랭장고도 편히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생활이 시작되던 처음에는 이런 전기제품들이 오히려 불편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습고 창피한 일이긴 하지만 저는 전기 제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세탁기도 아들이 작동시켜 주어야 빨래를 할 수 있었고 전기밥솥도 아들이 켜 주었고 청소기는 아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불 빨래도 매번 내 고향에서 하던 방식대로 욕조에다가 담가 놓았다가 발로 문지르고 손으로 빨래를 했었고 아들이 없으면 냄비에 밥을 지었고 청소기는 아예 몇 년 동안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딸이 3.8부녀절을 계기로 질 좋은 밥솥과 청소기를 구입해 주면서 밥솥과 세탁기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거든요.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벌써 이불 세탁은 끝났고 깨끗이 빨아놓은 이불에서는 향긋한 봄 냄새로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그냥 이불을 툭툭 털어 빨래 줄에 널어만 주면 되거든요.

솜도 털어야 할 염려도 없고 이불거죽(홑청) 잡아당길 일 역시 없습니다. 반듯하게 펴서 햇볕에 잘 널어 주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우리 주부들이 할일이 크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청소는 청소기가 해 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고 밥은 전기밥솥이 해 주고 밑반찬은 한 번 해 놓으면 며칠은 먹을 수가 있고 겨울에는 전자레인지가 있어 짧은 시간에 더운 음식을 먹을 수가 있고 랭장고가 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것을 먹을 수가 있거든요.

내 고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그저 그림에서만 볼 수 있었던 행복한 한국 생활에 저는 지난 시절 고향에서의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은 기억하기도 싫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 고향에서의 고생스러웠던 추억도 될 수록이면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하다보면 아직도 내 고향에서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주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