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데오 거리서 떠올린 젊은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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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민족화해분과 회원님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어 로데오 거리로 갔습니다. 젊은 남녀 청춘들로 벅적이는 로데오 거리에 도착하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 동네로 이사온지 3년이 지났지만 동네 근처에 이런 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살았거든요.

로데오 거리는 300m쯤 되는 거리인데 정말 거짓 없이 10대 20대 젊은 청춘남녀들이 사람이 지나 갈 수 없을 만큼 꽉 차있었습니다. 음식점들 역시 젊은 청춘들이 좋아하는 피자, 햄버거, 빵집 그리고 떡볶이 커피숍이 기본이었습니다. 조금 먼저 도착한 저는 사람들이 모이는 잠깐사이 내 옆을 슬쩍 지나가는 한 쌍의 남녀 커플이 다정하게 손목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나간 먼 옛 추억에 푹 빠지기도 했습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양이 고향이라 도시에서만 자란 저는 이제 군복을 입으면 다시 평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거든요. 정말 그때의 보름이라는 기간은 너무도 짧게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학창 시절과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동창생들과 함께 평양 시내가 좁다할 만큼 돌아다녔습니다.

오늘은 락원영화관 내일은 대동문영화관과 전승영화관 그리고 장경영화관과 모란봉 야외극장 등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영화들이 상영된다고 하는 영화관들은 다 찾아다닌 듯 하네요.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며칠 있으면 군복을 입는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어머님은 다 큰 여자애가 밤늦게 어디로 싸돌아다니는 가고 잔소리 합니다. 한창 5월초라 모란봉 천리마 거리에는 살구가 누렇게 익어 가고 모란봉 야외공원에는 철쭉꽃과 갖가지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웠거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5,1절 명절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대동강에서 보트를 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보트들이 몰려와 내가 타고 있는 보트를 빙 둘러 막았습니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18살이 되도록 노래 한 번 불러 보지 못한 저는 조금 당황하기도 했습니다만 눈치 빠른 친구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노래를 시켰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함께 스케이트 훈련장에서 몇 번 보았던 연못고등중학교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군입대를 며칠 남겨둔 친구였는데 평상시 남모르게 저를 많이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해 신입 병사 훈련 과정을 마치고 황해도 신계에 있는 공군사령부 소속 80여단에 배치되어 훈련 중에 갑자기 급성 맹장에 걸려 2군단15사단 군의소에 입원했습니다.

뜻밖에 그곳에서 15사단 후방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거든요. 정말 반가워했습니다. 제대 이후 그 친구는 사회 안전부 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정치대학 후방부 참모로 배치 받았습니다. 제가 장교가 되어 휴가로 고향을 찾은 후에 결혼을 청해오기도 했던 친구였습니다만, 서로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정말 좋은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잠깐 사이에 이런 지나간 추억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민족화해분과 회원님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낯익은 회원님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회원님들도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회원 중에 탈북자가 3명이었습니다. 고향이 함북도 무산과 회령에서 온 친구들이었고 이곳 한국에 온지 10년이 된 친구도 있었고 5년이 지난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최고령 선배이기도 합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같은 조선말을 쓰고 함께 살을 맞대고 살고있는 남편과도 때로는 서로가 통역원이 아닌 통역원이 되어야 할 때가 있는데, 70년을 서로 갈라져 문화가 다른 체제에서 살아 온 남과 북 주민이 서로 화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북한을 알려면 우리 탈북자들을 알아야 한다고 저는 말을 했습니다.

고향 북한을 떠나 이곳 한국에 온 우리 탈북자들을 처음 보는 회원님들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만 저는 오늘 민족화해분과 회원님들과 만남도 좋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이런 좋은 로데오 거리가 있었다는 것과 함께 지나간 추억을 새삼해 보는 행복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