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봄 나물 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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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힘든 겨울은 어느덧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의 화창한 봄이 왔습니다. 가을이 남자들의 계절이라면 봄은 우리 여성들이 좋아하는 계절이랍니다. 요즘 길거리나 버스, 전철을 타면 여성들의 화사한 옷차림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한번 외출을 하려면 옷장 문을 열고 제일 예쁘고 화려한 옷을 골라 입어 보면서 한참동안이나 거울 앞에 서서 이리보고 저리 살펴보곤 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봄이 되면 여성들이 옷 입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바로 주부들이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될 봄나물을 캐러 산으로, 들로 즐거운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는 친구 영숙이와 4월의 봄을 만끽하려는 의미에서 커다란 주머니와 호미 그리고 나물 캐는 칼을 들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경기도 화성까지 갔습니다. 주말이면 나물 캐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평일인 금요일에 갔습니다. 오전 10시쯤, 친구 영숙이와 저는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금정역으로 갔습니다. 금정역에서 내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는 330번 버스를 타려고 막 달려갔습니다.

힘들게 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버스기사 아저씨의 우스갯소리에 우리는 제법 여유 있는 농담까지 하면서 제부도 쪽으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 영숙이가 차멀미를 조금 하는듯해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1시간을 달려서야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약속했던 사람들과 화성에서 만나 다시 약 10분간 차를 타고 갔습니다. 도착한 곳에는 자그마한 야산이 있었는데, 산기슭에 달래가 새파랗게 깔려 있었습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래를 캐던 저는 잠깐 앉아 쉬면서 가지고 간 사과를 꺼내 쪼개어 친구와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사과와 우유를 먹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지나간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이맘때면 고향에서 겨울김장이 떨어져 마을 주변에 있는 개울가에서 금방 봄을 맞아 뾰족뾰족 돋아나는 미나리를 뿌리째 캐다가 무쳐 밥상에 올려놓았던 일이며, 물쑥을 뜯어 무쳐 먹던 일, 중국에서 3월 중순쯤이면 강냉이 밭고랑 양지쪽에 겨우 돋아나는 달래를 캐, 무쳐 먹었던 이야기, 5월에는 산으로 다니며 고사리를 뜯다가 뱀을 보면 질겁해 산 밑으로 막 달려 내려갔던 지난 추억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봄이면 점심을 싸가지고 친구들과 평양시 근처인 강남군과 역포구역 주변에 있는 작은 개울가를 찾아다니며 미나리를 뜯던 이야기와 고난의 행군시기, 단오 날 전에는 아무 풀을 먹어도 독이 없다는 말에 능쟁이라는 독풀을 뜯어다가 나물로 해먹어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 육체적 상처를 남겨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덧붙였습니다.

함북도 무산이 고향인 영숙이는 봄에 비가 오다가 멎은 뒤에는 산에 올라 깜장 버섯을 뜯어 중국에서 장사 나온 사람들에게 팔아 쌀을 구입해 먹던 일들,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에서 이름 모를 풀도 많이 뜯어다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곳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이 많은 분들은 봄이면 건강에 좋은 냉이와 미나리 그리고 달래와 물쑥을 재미로 캐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물쑥하나를 뜯어 쥐고는 수제비를 해 먹으면 참 향이 좋고 맛있다고 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 산과 들나물을 뜯어먹어야만 했지만 이곳 대한민국 주민들은 건강식품으로 또는 옛날 지난 추억을 더듬으며 산나물과 들나물을 뜯는다는 얘기를 듣고 남북한 주민들의 삶을 비교해보며 또 한 번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달래도 캐고 길장구도 캐고 민들레도 캤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막 돋아나는 새파랗고 먹음직스러운 미나리도 많이 뜯었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미나리를 뜯고 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돌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큰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큰 도로로 뛰어 나왔습니다. 금방 허물을 벗고 나온듯한 독사뱀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뛰어 나왔습니다.

5월이면 캄캄한 굴속에서 나오는 줄 알았던 뱀이 벌써 나왔다면서 다들 놀랐습니다. 그랬더니 달래를 캐던 한 친구가 습기가 많은 곳이라 뱀도 햇볕을 쪼이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저녁 6시에 차가 올 때 까지 달래를 캐겠다고 약속을 했건만 우리는 뱀에 놀라 더 캐지 못하고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옻닭백숙을 시켰습니다. 공기도 좋고 시골집에서 먹는 닭백숙에 영양죽은 참 별미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초봄에 뱀을 보면 그해 재산이 늘어난다고 했는데, 하면서 궁금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따스한 봄을 만끽하기 위해, 또 하루 동안 들판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봄나물을 캤지만, 오늘 이 시각에도 먹을거리가 부족해 산과 들로 풀을 뜯기 위해 헤매고 있을 고향의 주부들을 생각하니 아픈 마음은 영숙이도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