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통일나무 심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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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식목일 하루 전인 4월 4일 일요일에 저와 같은 남한에 온 탈북자들과 함께 제 65회 통일나무 심기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북한에서 가까운 경기도 파주에서 어린 잣나무 묘목을 심었습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남한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크게 놀란 두 가지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산마다 숲이 무성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산이 많이 푸르렀지만 6,25전쟁을 겪고 난 직후엔 이곳 남한에도 벌거벗은 산이 많아 여름 장마철이면 산사태와 홍수 등 많은 피해가 있었고, 산이 주는 풍요로움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6.25 이전에 겪었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큰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하느라 많은 나무들을 망쳐 놓기도 했고, 산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가는 수탈을 자행했다고 합니다.

저는 언젠가 한 유명인사에게서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뒤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길에 하늘에서 벌거숭이가 된 산들을 내려다보며 마음 아파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후 남한의 산들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합니다.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 것은 1949년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재직할 당시인 1970년 6월15일에 대통령령으로 제정하고 공포해서 이 날을 공휴일로 정했고, 식목일엔 전국적으로 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일 년 중 이 날을 나무 심는 날로 정한 이유는 4월 5일이 신라가 삼국 통일을 달성한 날이고, 조선시대 성종이 농업 장려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직접 농민의 밭을 갈았던 날이기도 하며, 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가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데 일년 중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학적 이유로 식목일이 4월5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내 고향 북한에도 '식수절'이라고 하는 나무를 심는 날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해마다 4월 6일이면 전국적으로 학생들과 인민반 주민들과 직장에서도 나무 심기를 많이 합니다.

올해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해 보고 나무 심는 방법도 남북한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한에서는 구덩이에 뿌리가 상하지 않게 꽁꽁 새끼로 묶은 나무를 넣고 꽁꽁 묻어 주고 밟아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산의 흙은 전부 부식토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우선 나무가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넣고 3분의 1되는 곳에 흙을 넣고 꽁꽁 밟아 준 다음 물을 붙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머지 흙으로 북돋아 줍니다.

북한에서는 나무를 심은 다음에 물주기에도 학생들을 동원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물주기에 동원됐다가 교복이 흙범벅이 돼서 제가 손질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내 고향에서도 나무 심기는 많이 하는데 산은 벌거숭이랍니다. 땔감이 없어서 주민들이 산에서 나무를 마구 베기도 하고, 먹을 것을 직접 경작하기 위해서 소토지를 개간하느라 산에 불을 많이 내기 때문입니다.

하여 여름 장마철에는 큰물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농경지가 파괴됩니다. 농토가 산성화되어 농사도 잘 안되는데다가 큰물 피해까지 당하고 나면 한해 농사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북한에 있을 때 어느 해인가 묘목을 주지도 않고 무조건 심으라고 해서 저는 할 수 없이 남들이 다 자는 한밤중에 몇몇 주민들과 함께 다른 마을에 가서 과일나무 묘목을 몰래 뽑아다가 제가 사는 마을에 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심은 나무마저도 그 이듬해에 다 죽고 겨우 세 그루만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쯤 그 과일나무엔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려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군복무 시절 고사포 진지에 수없이 심었던 그 소나무들이 모두 푸르게 살아있다면 숲이 무성할 텐데, 그 사이 어느 집 아궁이에서 땔감이 돼서 타버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식목일 전 날 파주에 심은 잣나무는 아마도 무럭무럭 자랄 것입니다. 잣나무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서 커다란 잣송이가 달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넉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