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날씨는 포근했다가도 이내 쌀쌀해지고 변덕스럽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거리와 마을 곳곳에는 노란 매화꽃과 벚꽃이 활짝 피어 있고, 멀리 보이는 산에는 진달래꽃이 피었는지 분홍빛이 참 아름답습니다.
꽃 피고 새싹 돋는 싱그러운 봄 기운을 맞고 있지만, 제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합니다. 이상하게 고향 생각이 문득문득 나기도 하고, 아직 여름 휴가철도 아닌데 자꾸 넓은 바다를 구경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고, 높은 산에 올라 마음껏 소리치고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봄을 타고 있나 봅니다.
지난 주말에는 자꾸 쓸쓸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아들과 함께 두 딸들이 사는 평택으로 갔습니다. 두 딸과 손자, 손녀와 함께 찜질방의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가 땀도 내고 때밀이도 하면서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쭈꾸미를 먹으러 아산만으로 갔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하는 아들의 모습과 두 사위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넓은 서해 바닷가를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습니다. 서해 바닷가의 밤 풍경 또한 색달랐습니다. 고기 잡는 어선들에서는 빨간 불빛이 반짝거렸고, 등대는 고기 잡는 어선들에게 뱃길을 밝혀 주고 있었습니다. 밤 바다 파도소리는 유난히 요란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보리싹이 뽀송뽀송 올라올 때가 제일 맛이 좋다는 숭어와 역시 지금이 제철인 주꾸미를 시켰습니다. 주꾸미는 쫀득쫀득하고 알이 통통 차 있어서 정말 맛있었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저는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자식들과 손녀와 헤어져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해 고속도로는 주말이라 차가 조금 막히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하는 드라이브라 마냥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늦은 밤이라 제가 피곤해할까봐 불편하면 뒷좌석으로 옮겨 편히 누워가라는 둥, 차 안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켜 주는 둥 신경을 많이 써 주는 아들이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우리 가족이 지금 평양에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해 봤습니다. 그러자 우리 가족이 사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부러진 허리를 하고 장마당에 나가 앉아 남새나 공업품과 음식을 팔고 있는 제 모습과 평양 방직공장으로, 군수 공장인 105피복 공장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언제 한번 바닷가 구경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높은 산에 올라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올라갈 수가 없고, 울고 싶어도 마음대로 울 수가 없고, 웃고 싶어도 마음대로 웃을 수 없는 내 고향 평양에서의 생활은 정말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열악하고 고달픈 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뎌왔는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가족이 지금 남한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의 참맛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견디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는 봄을 타서 마음이 울적하면 언제든 바닷가에 갈 수도 있고,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전국 일주 여행도 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어느 나라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습니다. 산이나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소리도 지를 수 있고 마음대로 크게 소리내어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지방특산물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번 서해 아산만 나들이는 가고 싶을 때 어디든 갈 수 있고, 슬플 때나 기쁠 때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새삼 느끼게 해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음번엔 새로운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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