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예쁜 꽃들이 만발하게 활짝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목련꽃에 이어 개나리꽃과 벚꽃이 도시와 마을을 더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부부동반모임이 있어 회원님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음식점 부근에 있는 이름 없는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이곳저곳 연분홍진달래 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진달래 꽃잎을 몇 개 뜯어 입에 넣는 순간 새콤달콤 진달래꽃 향이 입 안 가득 퍼지자 기분이 괜히 상쾌해졌습니다.
친구 분들 역시 너도 나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진달래 꽃잎을 입에 넣었습니다. 잘근 잘근 진달래 꽃잎을 씹으며 어느덧 정상에 올랐습니다. 마침 정상에는 약수도 있었고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정자도 있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정상이었지만 금방 식사 뒤끝이라 많은 땀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땀도 식힐 겸 또 맑은 공기와 약수도 마실 겸 한 명 두 명 어느새 모두가 정자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저물어 가는 인생 타령으로 시작해 이제 걸음마를 뛰고 있는 손자 자랑으로 이어지고 고향 자랑으로 이어지네요. 어머님의 포대기 속에 업혀 이곳 한국으로 오신 고향이 평남도 맹산인 회장님이 인제는 나이가 많아 외출을 하지 못하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으로 갈 그날만을 기다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습니다.
총무 역임을 맡고 있는 분이 활짝 핀 진달래꽃 한 가지를 꺾어 손에 들고 와 남편에게 드리며 한마디 합니다. 인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처음 만났을 때 경상도가 고향인 남편은 경상도 사투리로 여자의 손이 곱지 않다고 해 누가 볼까 두려워 손을 감췄다고 합니다. 얼마 뒤 활짝 핀 진달래꽃을 주었는데 받지 못했다고 해 우리는 작은 야산이 떠나 갈듯이 크게 웃었습니다.
60이 훌쩍 넘은 남편은 언제 그랬냐고 하네요. 이름 없는 작은 무명의 야산에서 웃고 떠들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활짝 핀 진달래꽃을 보면서 지나간 고향에서의 얘기를 했습니다. 평양에는 진달래꽃이 아무리 일찍 피어도 4월 중순이 지나야 피거든요. 김씨일가의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 활짝핀 진달래꽃을 놓기 위해 겨울에 눈 속에서 빨간 산딸기를 찾듯이 추운 겨울에 벌써 평양시 주변 산들을 찾아다니며 한 가지 두 가지 진달래 가지를 꺾어 아랫목에 비닐과 이불을 씌어 피웠던 지나간 추억을 더듬으며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한 분이 왜 꼭 그렇게 할 이유가 뭐냐고 물어 옵니다. 누구보다도 높은 충성심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꼭, 아니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자 모두 놀라워합니다. 이곳 한국에 온지 15년이 되었지만 해마다 이 많은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볼 때 마다 들판에 피어난 야생 들국화도 부족해 우리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던 지난 가슴 아팠던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비록 지나간 오래된 추억이었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김일성 사망 이후 매일같이 만수대 동상으로 가야 하는데 손에 들고 갈 꽃이 없어서 강선까지 걸어서 들국화를 꺾으러 갔었거든요. 비가 많이 내리던 장마철이었습니다. 주먹밥을 싸가지고 당시 13살이었던 둘째 딸과 함께 아침 일찍 수 십리 길을 걸어서 강선으로 갔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들국화를 꺾기 위해 산이나 들판으로 걸었거든요. 들국화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비바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굵은 소낙비에 손에 들었던 들국화꽃이 그만 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딸애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한참 말없이 슬프게 울고 있는 딸애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밤에 자다 말고 말없이 슬그머니 나갑니다. 한참 만에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빨간 장미꽃 몇 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밤에 대동강역 근처 공원에서 훔쳐 왔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한데서 카톡이 달랑 날아왔습니다. 활짝 핀 진달래꽃 사진 한 장과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다고 하면서 누구의 말을 되새기며 보라고 하네요, 북한에서 온 탈북자라면 누구나 통하는 말뜻이기도 합니다만 정말 진달래꽃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네요,
부부모임 회원님들과 함께 이름 없는 야산 정자에 앉아 활짝 핀 진달래꽃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연의 꽃마저도 부족했던 고향에서의 지나간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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