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따기 체험과 딸기 두 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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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에 없는 이상 기온으로 벌써 더위가 찾아온 듯합니다. 봄에 피는 꽃에도 순서가 있답니다. 맨 먼저 피는 꽃이 개나리꽃이고 벚꽃이 폈다 지면서 목란과 진달래, 홍매 꽃이 피고 이어서 철쭉, 장미꽃이 핀답니다.

하지만 올해는 봄이 되자마자 기온이 높아져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철쭉, 홍매가 동시에 핀 것 같네요. 아파트 현관에 나서면 벌써 진달래, 철쭉꽃 향기, 거리에 나서면 벚꽃 향기와 홍매 꽃향기가 솔솔 나는 게 괜스레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하기에 꽃 축제 구경을 가려고 주말이면 집집마다 분주합니다. 지난 주말도 역시 봄나들이 가는 자가용 승용차로 고속도로가 꽉 막힐 정도였습니다. 그 대열 가운데 우리 가족도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 충청남도 논산시 논산천 둔치에서 열린 딸기 축제장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침 밥상을 물리자 딸기 축제에 갈 준비를 서두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습니다만 제 마음은 벌써 손자 녀석들 못지않게 딸기 밭에 가 있었답니다. 주말이라 차가 밀려 시간이 조금 걸려 축제장에 들어섰는데 금방이라도 하늘 높이 날아오를 듯 바람에 흔들리는 딸기풍선을 보는 순간 제 얼굴은 함박꽃이 피어나듯이 환해졌고, 손자 녀석들은 좋아라 깡충깡충 뛰었으며, 제 엄마 품에 안겨 있던 3살짜리 손자 역시 어서 내리겠다고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주차하고 작은 개울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위에는 딸기 축제라고 쓴 깃발들이 바람에 나붓거렸습니다. 손자 녀석들은 벌써 어른들 손에서 벗어나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달려가는 손자 녀석들이 좁은 나무다리 위에서 떨어질까 조금 두려운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들어 저는 손자들을 따라 정신없이 뛰다보니 남 보기에 마치 작은 꼬맹이들과 서로 다툼질을 하는 듯도 했습니다만 누가 할미고 누가 손자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동심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벌써 다채로운 많은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는 축제장의 분위기 역시 잔치 같았습니다. 논산의 딸기 축제장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이미 달콤하고 향긋한 딸기의 향과 맛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는 듯도 했습니다. 딸기로 변장한 사람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수많은 꽃 축제장과 과일 등 농산물 축제장은 여러 번 가보았지만 딸기 축제장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갖가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 축제현장 가까운 곳에 있는 딸기 체험 현장으로 갔습니다. 온실로 들어서기 바쁘게 벌써 손자들은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저 역시 제일 큰 딸기를 하나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꿀맛 같이 달콤한 딸기를 입에 넣는 순간 행복함과 즐거움이 그대로 온몸에 스며들었습니다.

제 일생에 딸기를 직접 내 손으로 따서 입에 넣어 본 것은 두 번째랍니다. 첫 번째는 제가 군 복무하던 시절, 중대 교양실 앞마당에 딸기 몇 그루를 심은 적이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나자 흰 딸기열매가 열렸고 며칠이 지나자 빨갛게 익었습니다. 교양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곤 했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딸기가 열렸는데, 그만 하루는 그 딸기가 몇 알 없어졌다고 중대 정치지도원이 비상소집을 실시했습니다. 전투 근무 임무를 수행하고 중대로 내려오는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저는 전투 훈련인 줄로 착각을 하고 소대 무기고를 열고 소대원들에게 자동 보총을 공급했습니다.

중대 마당에 나가보니 우리 소대원들만이 자동 보총에 예비 탄창주머니 등 전투 준비를 착용해 다른 소대원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중대 정치지도원이 나오더니 빨갛게 익은 딸기 몇 알을 누군가 따먹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딸기나무는 제가 심었거든요.

제가 입대한 부대는 시설 부대였습니다. 그야말로 말뚝 몇 개만 박아놓은 곳에 우리 힘으로 병실도 짓고 교양실도 건설해 지었거든요. 중대 교양실이 거의 완공되어가던 시기에 생각지 않게 주변 농장에 갔다가 딸기나무 몇 그루를 구입하게 되어 정성들여 심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딸기나무를 정성들여가며 한창 심고 있는데 금방 중대 정치지도원으로 배치되어온 이가 무슨 군부대 안에 이런 것을 심느냐고 비판을 했었습니다.

속으로는 그 정치지도원이 괘씸했습니다. 비록 심을 때에는 관심도 없었고 비판을 하던 인간이 고작 누군가 딸기 두 알을 따먹었다고 이렇게 비상소집까지 일으킨다고 생각을 하니 말입니다. 더 웃기는 것은 매일매일 딸기의 숫자를 확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범인은 찾을 수 없었지만 사시사철 따로 없이 딸기를 먹을 때마다 그때 일이 기억납니다.

딸기 체험장에서 직접 손으로 딴 딸기로는 짬(잼)을 만들었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딸기짬에 딸기 가래떡까지 만들어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비록 해마다 가던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축제는 가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경험을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해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