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봄, 4월의 벚꽃 축제가 서울 여의도 한강 기슭에서 한창입니다. 여의도뿐 아니라 동네마다, 길거리마다 봄을 알리는 매화꽃, 벚꽃, 진달래꽃이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어 서게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꽃향기가 솔솔 날아들어 옵니다. 기분이 매우 상쾌해지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출퇴근길에 나서면 저도 모르게 꽃향기에 상쾌한 기분으로 손전화기를 들게 됩니다. 어제도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 출근시간에 꽃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좋다는 등, 퇴근 후 맛있는 식사를 하자는 등, 아예 꽃을 손전화기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는 등 붕 뜬 기분에 괜히 쓸데없는 전화요금을 올리기도 합니다.
해도 많이 길어져 저녁 퇴근시간이라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듯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뼈감자탕 집을 찾았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헤어지기가 아쉬워 차를 마시러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친구들도 이제는 당연히 제가 말을 먼저 하지 않아도 만나자마자 궁금해 하는 소식 중 하나가 바로 제 손자들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수다 방법도 변하는가 봅니다. 아이들을 키울 적에는 친구들과 모이면 아이들 자랑으로 시작해 남편 흉과 시부모 흉으로 마감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고 또 어디에 가면 경치 좋고 분위기 좋은 곳이 있다든가 아니면 손자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이번에도 친구들에게 저는 강릉 MBC, 문화방송 연출자들과 함께 평택 호에 가서 우리 아이들과 촬영한 얘기를 신나게 자랑했습니다. 평택 호는 넓고 푸른 바다를 둑으로 막아 만든 인공호수라 참 웅장하고 아름답기에 이번 촬영장소를 거기로 잡았다는 등 이번에 가보니 이미 소문이 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는 등 또 문화 예술극장이 새로 건설돼 더욱 좋았다는 등 제 자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제 자랑을 듣고 한 친구는 얼마 전에 손자가 태어났는데 벌써 웃고 옹알이를 한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이제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됐는데 무슨 옹알이를 하느냐고 애를 키우는 엄마들은 하루 거짓말을 20번은 한다고 덧붙여 한마디 해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손자 이름이 김정은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한 친구가 북한 같았으면 김정은이란 이름을 지을 수도 없지만 당장 고치라고 난리를 부렸을 텐데...하고 북한 인민은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던 지난 기억으로 우리는 한탄했습니다.
친구 영숙이는 원래 이름이 영자였는데 '자'라는 이름이 일본 이름이라고 갑자기 고치라고 해 '자'를 '숙'이라고 고쳤다고 했습니다. 1970년 초기에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정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강제로 개명하도록 했습니다. 제 동창들 중에 정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애가 있었는데 갑자기 정민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개명했었다고 했습니다.
한 친구는 이번 인터넷 기사에서 봤다면서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이 그래도 지도자라고 김정은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이름을 고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참 웃기는 일은 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이란 이름은 단 한 명만이 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마디씩 덧붙였습니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지금의 대통령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과 전 대통령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만 누구 하나 이름을 개명한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들은 아기들에게 예쁘고 부르기 편리하면서도 좋은 이름을 지어 주기 위해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소에 돈까지 써가며 한자풀이를 합니다.
저도 손자들에게 가장 예쁘고 좋은 이름으로 지어 주려고 이름을 짓는 분을 찾아가 손자가 태어난 시간까지 대 가며 지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지어도 당성과 충성심에 관련해 지어야 했습니다. 하여 저는 아이들에게 은혜 '혜', 밝을 '명'과 빛 '광', 이룰 '성'이라는 한자 글을 따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곳에서 살아온 친구들에게 가끔 김 선생님은 당성이 높고 충성심이 높았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놀림을 받아 웃을 때가 많습니다.
북한에서 3태자(세쌍둥이)를 낳으면 당에서 강제로 충성이, 효성이, 은정이라는 이름을 지어 줍니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은 '김정숙'은 김정일 엄마라고 그 이름을 가질 수 없고 이제는 '김정은'이란 이름조차 가질 수 없어 강제로 개명을 해야 하고 김일성, 김정일이란 이름은 2,300만 북한 인민들 중 단 한사람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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