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태양절에 날린 대북 전단

0:00 / 0:00

지난 4월 15일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을 태양절이라고 합니다. 탈북자 단체들은 그 날 전단지가 든 풍선을 북한에 날려 보냈습니다. 저도 삐라 보내는 행사에 참가 했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싼 작은 공간인데 이슬비가 내려 안개가 조금 낀 날씨였지만 제가 보기에도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 매우 좋은 날씨인 것 같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좋은 자리를 잡고 서둘렀습니다. 드디어 준비가 완료되고 전단지를 넣은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북녘하늘로 씽씽 올라가는 풍선을 바라보며 저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기구부대에서 군복무를 한 적이 있는데 이곳 남쪽에서 날아오는 풍선을 잡아 거기에 화장실에서 가져온 변을 넣어 다시 날려 보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군 복무기간 부대 주변에 떨어진 삐라를 주워 바치던 모습을 흉내로 내 모두 웃었습니다. 머리를 옆으로 돌리거나 눈을 감고 한손으로 주워 정치 장교나 보위지도원에게 주던 이야기들을 흉내 내며 모두 웃었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날 저에게도 군복무 시절이 있습니다. 제가 군 복무하던 황해도 신계군은 북한에서 군부대가 많이 배치되어 있는 중부전선입니다. 1975년 5월쯤이었습니다. 그날도 화창한 늦은 봄날이라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습니다. 한창 고사총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반짝 반짝 햇살에 비쳐 눈이 부신 종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보초병에게 부대 지휘부에 보고할 것을 명령을 하고는 얼결에 달려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종이 한 장을 손으로 잡았습니다. 화보에 그려진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어느새 보고를 받은 정치부대대장과 보위지도원 그리고 중대장과 중대 정치지도원 등 수많은 부대 장교들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이 달려 왔습니다.

소대 대원들이 한 장이라도 볼까 간부들은 두 눈에 쌍 심지를 켜고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위협도 하고 눈을 감고 머리를 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으로 한 장을 감췄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전투근무 장소로 들어간 저는 근무교대를 시켜 놓고 몰래 구실을 만들어 포탄고로 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감추어두었던 삐라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러나 누가 제 목덜미를 잡는 것 같아 정확하게 자세히는 보지 못했으나 그때 제 기억으로는 북한군 한 명에 포상금 몇 억 원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가 볼까 두려워 그 자리에서 불을 붙여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 소대는 하루에도 진지를 몇 번이나 훑고 또 훑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군인들이 제일 깊이 잠든 새벽에 부대 내 하사관들과 당원들에게만 폭풍 전투준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잠이 덜 깬 저는 두 눈을 비비며 30발의 탄알이 장탄되어 있는 자동보총과 탄창을 메고 부대 연유탱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15m의 길이로 된 비닐 주머니가 널려 있었고 맨 밑에는 자그마한 촬영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지금 보니 바로 풍선이었습니다. 그때에는 남조선에서 날아온 기구라고 했습니다. 그 풍선은 사령부로 보내졌고 그날부터 군인들에게는 진지 내에 떨어져있는 낯선 물건에 손을 대면 독성분이 있어 서서히 썩어들어 가니 절대 만지지 말라고 선전 교육을 했었습니다.

많은 경우 여성들의 양말이나 팬티 브라자 등 인데 그것을 주어 입으면 살이 썩어 죽는다고 했습니다. 지난 1990년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북한군은 남조선에서 식료품을 기구에 넣어 뿌렸다면서 그 식료품을 주워 먹고 서서히 말라 죽었다는 얘기, 또 어떤 사람은 떨어진 식료품을 감추어 두고 개미가 붙은 것으로 골라 먹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많이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그 사회에서는 그럴 듯한 선전 선동을 정말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한국에 온 저는 그 선전 교육이 새빨간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곳 한국 국민들은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왜곡되고 조작된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2300만 인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핵을 만들어 지난해만 해도 수백억 원을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인권의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계속 풍선을 날려야 합니다.

북녘 하늘로 높이 날아가는 풍선을 보면서 남북이 통일되는 길에 비록 작은 힘이지만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