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괭이와 뜨락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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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뜨락또르가 퉁퉁 소리를 내며 밭갈이가 한창입니다. 지난 주말 난데없이 큰 뜨락또르 한 대가 우리 주말농장의 밭으로 들어옵니다. 조금 놀란 눈으로 남편의 모습을 보니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밭을 갈아 달라고 이미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뜨락또르는 잠깐 사이에 몇 번 왔다갔다 하더니 어느새 밭을 다 갈아엎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뜨락또르를 뒤따라 다니며 작은 돌, 큰 돌을 모두 골라내고 흙덩이도 부쉈습니다. 파릇파릇하던 냉이꽃과 민들레꽃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느새 우뚝우뚝 고랑과 이랑으로 정리 되었습니다.

밭갈이가 거의 끝나 갈 무렵 과일과 오미자차를 기사님에게 대접했습니다. 기사님은 또 다른 집 밭갈이를 해야 한다면서 차를 마시고는 부지런히 출발합니다. 뜨락또르의 퉁퉁 소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말끔하게 정리된 밭고랑을 바라보며 흐뭇한 기쁨과 함께 지난 날 고향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부족한 것이 많았던 지난날 내 고향 평양에서는 작은 텃밭이라도, 작은 땅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누구나 평양 시민이라면 상추라도 심어 먹을 수 있는 텃밭을 가진 사람을 너무도 많이 부러워합니다. 15일간 식량 공급을 받으면 아무리 조절을 해도 일주일이 지나면 벌써 식량이 떨어져 때걸이 근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량보다 채소가 더 귀해지는 것이 도시생활 주부들의 걱정 중에 큰 걱정거리입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꽃밭에 꽃 대신 근대를 심기도 하고 때로는 가지를 심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해에는 굴뚝 뒤에 몰래 호박을 심어 넝쿨이 굴뚝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그 해에는 호박도 제 마음을 알아주듯 지붕 위에 호박이 가득 달렸습니다. 어느새 호박넝쿨은 무성해 옆집 지붕으로 건너갔고 다음해에는 인민반 전체 주민들이 호박을 심었습니다. 다른 인민반 주민의 신고로 인해 연간 당 총회에서 비판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잠깐 지나간 고향 생각을 해 보니 얼굴에서는 쓰디쓴 웃음이 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남편이 또 고향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 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북한에서는 협동농장 밭갈이도 기름 부족으로 인해 봄가을에는 주민들로부터 디젤유를 거두곤 했었고 감히 개인 텃밭에는 뜨락또르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얘기와 호박 때문에 강한 사상투쟁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협동 농장 밭을 소로 밭갈이를 하는 것이 많다고 말하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텃밭은 삽과 곡괭이로 힘들게 고랑을 만들고 옥수수, 조, 기장을 심어 식량 보탬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식량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 가며 소토지와 텃밭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곳 한국에서는 요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100세 건강을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나의 건강과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주말마다 시간을 만들어 건강에 좋은 서리태 콩과 들깨를 조금씩 심고 있습니다. 봄이면 가족과 함께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타작을 해 내 가족과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행복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북한 주민들이 배고픔과 어려운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북이 통일돼야 한다고 남편은 말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옥수수 영양 단지 옮겨심기가 한창입니다. 북한주민은 인민학교 어린이들과 중학교 학생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과 주민들 할 것 없이 북한주민이라면 누구라도 조건없이 옥수수 영양단지 심기에 무조건 참가해야 합니다.

내 고향 주민들도 삽과 곡괭이가 아니라 기계로 농사를 지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