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아픔을 미끼로 사기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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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바깥주머니에 있는 손전화기가 갑자기 드르릉 하고 울렸습니다. 익숙한 솜씨로 손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난데없는 사진 한 장이 문자 메시지로 날아 왔거든요. 어렴풋하게 찍혀 있는, 현재 평양에 있는 친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조카에게 전화를 했더니 퍽 오래 전에 찍은 엄마의 사진이 맞다고 하네요.

그 사진을 보낸 전화번호를 눌러 확인전화를 걸어보니 현재 치료목적으로 이곳 한국에 들어 왔다는 중국 조선족이었습니다. 노원구 월계동 누구의 집에 머물고 있다면서, 묻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그분을 보고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함북도 무산을 통해서 보내는 송금은 100% 본인 손을 거쳐야 보낼 수 있고 현재까지 이곳 한국에 와있는 무산군 탈북자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면서, 어제도 이만갑에 나오는 누구와 함께 밥도 먹었다는 등 더 이상한 점은 제 고향을 여러 번 묻는 것과 함께 현재 어디에서 살고 있는 가고 여러 번 묻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본인은 오래 전부터 북한 무산군으로 장사를 많이 다녔고 현재도 본인 자녀들이 장사를 다닌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상한 점이 많았거든요. 하루 지나서 중국 전화로 다시 한 번 전화가 들어와 받았습니다. 낯 모를 남자 분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평양에 있는 언니가 너무 힘들어 올 수가 없는데 무산까지 데려 오라는가고 물어 오는 전화였습니다.

당신이 누구인데 내 언니를 데려 오겠다고 하는가? 이미 우리는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들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저는 두말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이런 문자 사진과 함께 걸려온 이상한 전화 내용에 대해 저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친구들은 한결같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네요.

긴장한 북한정세로 보나 또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강한 통제를 하다 보니 우리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또는 탈북자 가족들을 회원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 내 브로커들이 돈을 목적으로 하는 흔한 사기 행각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한국에 까지 직접 들어와 사기 행각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남의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먼저 중국으로 간 큰 딸을 찾아 40대 초반에 차디찬 두만강 물을 처음 건넜습니다. 캄캄한 야밤에 빠른 물살에 신발을 벗기고 맨발에 꽁꽁 언 벼 뿌리(그루터기)에 발이 찔려 피를 흘리며 아픔을 참지 못해 걷지 못하겠다는 작은 딸의 뺨을 때려 가며 불빛을 찾아 가야 살수 있다고, 저 불빛을 찾아가야 언니를 찾을 수 있다고 달래며 꽁꽁 언 몸을 끌고 불빛을 찾아 들어 갔습니다.

기대를 안고 겨우 찾아 들어간 그 집에 들어가서야 저는 인신매매 꾼에게 걸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공안에 고발해 잡혀 가는 모습을 보았고 6개월 된 임산부의 몸으로 온몸에 옴에 걸린 상태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인신 매매꾼들과 납치꾼들에게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는 등 수많은 우리 탈북 여성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모습을 보았으며 직접 당하기도 했습니다.

6년이란 긴 세월을 숨어서 살아야 했던 지난 중국에서의 삶.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안고 이곳 한국으로 그 어려운 길을 택해 왔거든요. 그런데 오늘 저는 이곳 한국에서 조차 '우리가 중국 조선족들에게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안 좋은 감정이 생깁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고 그리운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내 고향 북한은 김씨 3대 세습 독재로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유롭게 왕래도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는 곳이거든요. 고향에 있는 내 가족이 아차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고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정치범이 되기도 하는 북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 탈북자들은 특별히 정치적 안목과 각성을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