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는 꿈도 못 꿨던 온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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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개나리꽃을 비롯한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4월도 어느덧 저물어 가고 5월이 됐습니다. 저는 요즘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빠짐없이 안양 온천을 찾는답니다. 안양 온천은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를 발견하게 되어 온천장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안양 온천은 지하 804m에서 흘러나오는 천연 온천수로, 피부병인 아토피 치료에 참 좋은 유황 물이라 전국에 이름이 난 곳이기도 합니다.

황토 찜질방도 있고 천정이 뻥 뚫린 노천 온천탕도, 센 물줄기로 안마를 하는 안마탕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친구들과 안양 온천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첫 시간에 가면 요금도 조금 싸기에 우리는 항상 아침 첫 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이른 새벽 간단한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 가지고 첫 버스를 타고 구로 전철역으로 부지런히 갔습니다.

드디어 첫 전철을 타고는 모두 각기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첫 전철을 탔는지 확인 차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첫차를 탔다는 한결 같은 목소리를 듣는 제 얼굴은 밝아집니다. 저는 금정역에 도착해 4호선으로 바꿔 타고 범계역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거리가 조금 가까운 곳에 있는 제가 항상 먼저 도착하곤 합니다.

먼저 도착한 제가 조금 기다리자 다른 친구들이 도착했습니다. 보슬비가 내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북한 사투리로 지난 얘기들을 하면서 넓은 네거리가 떠나 갈 듯이 떠들썩하게 웃었습니다. 서로 서로 순번대로 요금을 계산하고는 찜질방으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순서는 아침밥을 먹는 것입니다.

서로 준비해 가지고 간 도시락과 과일을 먹으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웃어댑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귀순 언니도, 경옥 언니도 저에게는 참 좋은 언니들이기도 합니다. 두 분 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그분들은 마치 고향에 계시는 친언니와도 같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비누칠로 간단한 목욕을 하고 찾는 곳이 바로 황토 찜질방입니다.

경옥 언니는 처음에는 너무 더워 찜질방에 들어갈 생각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저보다도 훨씬 더 좋아 하게 됐습니다. 한번은 누가 더 오래 있을 수 있는지 내기도 해보았습니다만 경험이 많은 저보다도 더 오랜 시간 있을 수 있어 이제는 찜질방 선배라고도 놀려 주곤 합니다.

저는 노천탕으로 갔습니다. 뜨거운 물속에 들어 앉아 내리는 비를 맞고 있으려니 일본 하코네 관광 중에 노천 온천에 갔던 지나간 추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 못지않은 온천들이 많다는 것을 저는 언니들에게 자랑도 했습니다. 폭포수에 잔등을 대고 한참을 안마를 받으니 그야말로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안마탕에 들어가 한참을 누워 발과 잔등 그리고 허리에 시원한 물줄기 안마를 받고는 황토로 만든 뜨끈한 황토방에 들어가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천정을 바라보고 있던 경옥 언니가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좋은 세상에 와 있는지, 지난날에는 이런 곳에 와 살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언니는 북한에 있을 때 종성 온천에 부인병으로 한 달 동안 요양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곳 안양 온천에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북한에서 양덕 온천에 갔던 얘기를 했습니다. 땅속에서 아기 오줌 물처럼 졸졸 나오는 물을 많은 사람들이 작은 바가지를 들고 줄을 서서 순서가 되어서야 겨우 물을 받아 씻던 얘기를 하자 북한에서 온천 구경을 하지 못한 귀순언니는 세상에 그런 곳에서 제대로 된 목욕도 하지 못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 왔기에 하루 세 번 양치질도 할 수 있고 매일 목욕도 할 수 있고 이렇게 주말마다 온천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한국에 왔기에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마음껏 대접받는 공주병에 걸려 본다고 말해 찜질방이 떠나갈 듯이 크게 웃었습니다. 사실 북한 주민들은 하루 한 번 양치질도 겨우 할 수 있고 지방 사람들은 여름이 돼야 겨우 강이나 냇가에 나가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함북도가 고향인 경옥 언니는 여름이면 두만강 물에 나가 시원하게 마음대로 물을 써 가며 빨래도 할 수 있고 목욕도 시원하게 할 수 있기에 항상 겨울이면 여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고 해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군복무 시절 례성강 얼음을 도끼로 깨 빨래도 하고 머리를 감고나면 어김없이 떡 얼어붙은 머리카락을 싸쥐고 포진지로 정신없이 헐떡거리며 뛰어 달리던 애기를 했습니다.

우리 셋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전 내내 온천에서 수다로 시간을 보낸 뒤 꼭 빼놓지 않고 들리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전철을 타고 신촌에 내려 '형제 갈비집'이라는 수십 년 동안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고기집에 들려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을 뚝딱 먹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서로 각자 헤어져 집으로 온답니다. 오늘도 그래서 저는 친언니와 같은 분들과 즐겁고 행복한 주말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