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춘천 국군부대 강연

0:00 / 0:00

지난 주 저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국군부대로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4월 말이라 매우 화창한 봄 날씨였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강원도 춘천으로 갔습니다. 송화강을 끼고 있는 춘천의 공기는 서울보다 훨씬 맑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맑은 공기를 마시니 매우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중나온 부대 장교님의 안내로 차를 타고 부대로 들어가는 동안 저는 좀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보초병들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부대로 들어서자마자 느낀 분위기가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아늑해서 기분이 금새 편안해졌습니다.

서울에서는 벚꽃이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지만, 춘천에서는 꽃들이 한창 피고 있었습니다. 부대 병실 주변과 부대 내 넑직한 공터들, 부대를 끼고 있는 산들에는 목련꽃과 벚꽃이 지금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어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강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저는 꽃향기 가득한 부대 안에서 젊은 군인이 타 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되어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300명의 젊은 군인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길을 내려다보는 순간 조금 전까지만해도 편안했던 제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젊은 군 장병들 앞에 나서니 조금 떨린다고 말을 했더니 장병들은 다시 한번 큰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저는 박수에 힘을 얻어 서서히 긴장을 풀고 1시간의 강연을 무난하게 마친 뒤 부대 장교님들과 함께 부대 장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군 부대 안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저는 지난 날 북한에서의 군 복무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북한군에도 부대 마다 군관 식당이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풋고추가 없으면 밥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식사시간이 되면 제 손에는 풋고추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풋고추를 소금에 찍어 먹으면 별맛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 중대 군관들은 저의 풋고추를 얻어 먹으려고 제 식사시간에 맞추어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군인들이 실탄 사격을 하는 총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300명이 모두 실탄 사격을 한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총을 쏘고 싶은 충동과 제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부대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북한 군인들도 해마다 2월과 10월에 실탄 사격을 합니다. 2월에는 주간 사격을 하고 10월에는 야간 사격을 합니다. 언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안되어 신입 병사 시절에 야간 실탄 사격훈련장에서 조준 연습을 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곤하게 잤던지 사격을 할 순서가 다 된 줄도 모르고 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고사총 진지마다 포 탄약고 위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핀 4월이었습니다. 전투 근무 수행중에 근무 교대를 하다가 고사총 오발사고를 냈습니다. 그 날, 봄비가 내리고 있어서 저는 총 씌우개를 벗기지 않은 채 장탄 퇴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퇴탄을 하다가 실수로 5발의 오발사고를 낸 것이었습니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과 군 부대 장교들은 그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 달려왔고 저는 제가 저지른 오발사고로 인해 혹시나 사람이 죽었을까봐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저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제가 오발사고를 낸 후에 북한 군대에는 고사총을 장탄, 퇴탄할 때 안전을 위해 퇴탄봉이라는 도구가 새로이 등장했습니다.

춘천에서 군인들이 실탄 사격을 하는 총소리를 듣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인명피해를 냈을 지도 모를 저의 북한 군 시절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