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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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저도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알게 됐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로 부르는 이유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모두 5월에 집중되어 있으며 5월이 1년 열두 달 중 가정사에 관련된 기념일이 가장 많기 때문에 가정의 달로 정했다고 합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그야말로 모든 어린이들이 왕이 된 것처럼 보냅니다.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해마다 5월이 되면 항상 좋은 추억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은 조금 마음이 쓸쓸했습니다. 이미 며칠 전부터 5살 된 손녀에게서 장난감 전화기를 선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손녀의 모습과 할머니의 선물을 고사리 같이 작은 손에 받아 들고 기뻐할 손녀의 모습과 또 엉뚱한 행동으로 웃기는 작은 손자의 모습을 그려 보며 어린이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린이날이 되기 이틀 전 저녁에 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에는 모두 시부모님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서운해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어쩌면 두 딸 모두 이렇게 냉정한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서울광장과 청계천 광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가수들이 나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두 사돈들에게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내 귀한 손자들을 뺏겼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슬쩍 화가 난 저는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뜨거운 찜질방에 들어앉아 철철 흐르는 땀을 씻으며 해마다 내가 오히려 이기심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어린이날에 저와 손자들이 함께 보내는 동안 우리 사돈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늦게나마 헤아릴 수가 있어 미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원래 자식사랑이 강한 저로서는 조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것이 다 우리 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보니 어느새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진땀을 빼고 때밀이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의 마음은 시원하면서 한결 가벼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안중 화평 어린이집을 찾았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5살 된 손녀가 매일매일 어린이 집에서 공부하고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손녀의 모습과 열심히 그리고 색칠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체육시간에는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가 작을 정도로 아직 키가 작은 손녀였지만 친구들한테 지지 않고 환한 모습으로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북한에서의 지난 추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북한에서도 6.1 어린이날이 있습니다. 6.1절이면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만경대 유희장이나 대성산 동물원에 갑니다. 저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 뒤 야산에 가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먹었던 기억,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6.1절 어린이 날이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른 집 아이들에게 뒤질세라 정성껏 도시락 준비를 해주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올해 어린이날에는 손자들과 함께 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어버일 날인 5월 8일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두 딸과 두 사위 그리고 아들, 새로 만난 조카와 조카사위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한평생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을 어버이 날로 알고 꽃송이를 들고 만수대 동상을 찾았던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어버이날을 알게 됐고, 작은 딸은 빨간 장미꽃 100송이가 들어있는 꽃다발을 저에게 안겨 주면서 '어머니, 저희를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꽃다발과 함께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치는 큰 박수 소리를 들으니 순간 저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그러하듯 용돈도 듬뿍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 날 조금 서운했던 쓸쓸함은 어느새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5월의 싱그러운 녹음처럼 내 가족의 영원한 행복과 더불어 건강을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