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생각하는 어버이의 의미

북한의 어머니날인 11월 16일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북한의 어머니날인 11월 16일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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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아침 가족들과 함께 조금 늦은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황금 연못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황금연못 프로그램에 출연한 분들은 모두 65세가 지난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이 서로 각자 다른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이란 글을 가지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추억을 해보는 아주 멋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모두 소중하고 귀중한 추억을 두고 때로는 함께 즐거운 웃음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아픈 상처를 두고 함께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순간 밥을 먹다 말고 지나온 세월을 두고 과연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게 됐습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내 가족, 내 아이들과 내 손자들과 함께 어버이날 아침 둥근 밥상에 모여 앉아 갖가지의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세상에 부럼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텔레비전에 출연한 그분들보다 짧은 인생을 살아온 나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가슴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딸 부자집 둘째 딸로 태어난 저는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보지 못한 불효자식입니다. 아버님 마지막 길도 지켜 주지 못했지만 어머님의 마지막 눈도 감아 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거든요. 아버님이 사망하신(돌아가신) 날이 바로 김일성이 사망된 날이었습니다.

당시 나를 낳아 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며 손발이 닳도록 온갖 고생과 수고로 길러 주신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보다도 지금 생각해 보면 김부자를 어버이로 모시는 것이 응당한 것으로 알고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북한사회에서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이었습니다.

하기에 김일성의 장례연도 행사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참가했지만 내 아버님 마지막 길을 지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라면 모두가 겪는 아픔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표현조차 할 수가 없고 당 조직에 부모님 사망되었으니 가보겠다고 보고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내 고향 주민들은 자기를 낳아 주고 키워준 부모님의 생일은 잊고 살아도 김정은의 생일을 모르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생일은 해마다 찾아뵐 수 없지만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이 오면 새벽 일찍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만수대 동상을 찾아 꽃바구니를 바치곤 했습니다.

그 꽃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1월의 추위에 벌써 평양시 룡성 구역의 외지산을 찾아다니면서 진달래꽃을 한 가지, 두 가지 꺾어 아랫목에 이불을 씌어 피웠습니다. 진달래꽃이 없으면 화분을 구입해야 하는데 화분 값이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이지 못하면 당 대회를 열지 않겠다던 할아버지의 유훈은 고사하고 보릿고개로 인민들이 제일 어려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이때, 북한 당국은 7차 당 대회를 열고 주민들에게 장사도 하지 못하게 하고 이동도 못하게 강한 통제로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이런 철부지 30대의 어린 지도자를 어버이로 충성을 다해 모시고 있는 내 고향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이면 내 고향 주민들도 어버이날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며 세상에 부럼 없는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