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행사 많은 5월, 북한 명절 같아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제41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제41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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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어린이 명절로 시작해 많은 행사들이 있어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5월이면 어떤 이들은 지출이 너무 많다고 싫어하기도 합니다만 저에게는 아주 행복한 달이랍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낮에는 손자들과 함께 고양 국제 꽃박람회를 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무더운 날씨였지만 큰 저수지 주변에 활짝 핀 갖가지 꽃향기에 어울려 풍기는 시원한 물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맛있는 점심과 함께 손자들과 보낸 하루는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저녁 시간 역시 행복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부자가 아닌가 합니다. 하루 일을 마친 사위와 함께 아들,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손자 녀석들은 유치원에서 정성 들여 만든 카드와 함께 꽃송이를 제 앞가슴에 달아 주느라 서로 다투었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서로 먼저 제 가슴에 꽃을 달아 준다고 하면서 5살짜리 손자 녀석이 외사촌 누나를 밀쳐 7살짜리 손녀딸은 한참 동안을 삐쳐 삐죽거리며 옹알거리기도 했습니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어디에 비길 수 없을 만큼 너무도 행복하고 뿌듯했습니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바라보던 아들과 큰 사위는 두툼한 봉투를 제 손에 쥐여 주었고 작은 사위는 빨간 장미 꽃바구니를 안겨 주었습니다.

자식을 키운 보람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기쁨이 북받쳐 그만 제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어디에 비길 수 없이 행복한 우리 가족, 금쪽같은 소중하고 귀한 내 자식들, 그리고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개구쟁이 내 손자 녀석들, 누구나 저처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자식과 손자들을 두고 있지만, 우리 가족, 네 가족은 다른 가족들보다 더 특별히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고향 생각과 부모님 생각을 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나 기쁠 때마다, 또 특별한 날이면 그러하듯이 이번 어버이날에도 저는 잠깐 부모님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지난날 저는 내 부모님에게 자랑할 만큼 효도를 하지 못한 불효자식이었습니다.

고등 중학교를 졸업하자 어린 나이 18살에 군에 입대하면서 부모님과 생이별해 10년을 보냈고 제대되는 동시에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형제들보다 부모님 정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식량 사정이 제일 심한 탓으로 또 생각지 않게 부모님과 생리별을 해 마지막 부모님의 모습마저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둘째 딸인 저를 아들 맞잡이로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행증명서 한 장 없이 평양 시민증 하나 손에 쥐고 딸을 찾아 국경 연선으로 떠날 때에도 무사히 갔다 오라고 제 뒤에 앉아 소금을 뿌려 주셨고 언제나 꼭 둘째가 온다면서 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리다 잠에 들었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눈을 감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를 낳아준 내 부모에게는 불효자식이었는데, 오늘날 내 자식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때마다 저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자나 깨나 항상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 부모님 산소에 카네이션을 드릴 것입니다. 부모님이 저를 낳아주셨기에 오늘날 천국 같은 세상에 와서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행복한 새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겁니다.

내 고향에는 어버이날이 없습니다.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만 있을 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을 어버이로 모셨지만 결국에는 300만 주민들이 굶어 죽고 많은 주민들이 자유와 살길을 찾아 목숨을 던지며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사선을 헤쳐 제3국에서 떠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김 씨는 주민들은 집이 없어 추위에 얼어 죽고 굶어 죽는 것과 상관없이 많은 돈을 들여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쏜다고 하면서 주민들을 공포와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삐쳐 있던 손녀가 뽀르르 달려와 제 무릎 위에 앉으며 가슴에 달려 있는 꽃송이를 만지며 외할머니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남자답게 밥을 먹고 있던 손자 녀석도 달려와 왼쪽 무릎 위에 앉으며 저도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더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식사를 하다말고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1년에 몇 번 가족이 모두 모이는 명절 말고도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는 시간이 명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도 자식들 옆에서 살고 있기에 이런 명절이 자주 마련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날도 저는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