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정도로 화창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제부도로 향했습니다. 실은 넓은 바다 구경도 시원하게 할 겸 또 제부도의 별미를 맛보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부도에 도착하기 전 장외리를 지날 무렵 차가 조금 막히기 시작해 길거리에서 파는 과일을 살까 하고 잠깐 차를 멈추었습니다. 마침 벌판에 뜨락또르(트랙터) 한 대가 한창 논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논갈이를 하는 뜨락또르를 보니 고향 생각이 난다고 하던 큰딸이 갑자기 논두렁에 미나리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미나리가 밭처럼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제부도 가는 것을 미루고 미나리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두 딸은 미나리를 뜯으며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위에게 차를 한쪽에 세워 놓으라고 하고는 작은 손자는 등에 업고 큰 손녀를 안은 채 미나리 밭으로 갔습니다. 햇볕에 빛나는 미나리 잎과 그윽한 향이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미나리는 독특한 향이 있어 봄철 입맛을 돋우고 해독 작용이 뛰어나 해물에 넣어 음식을 만들어도 좋고 육류에도 잘 어울려 아무 음식에 넣어 먹어도 좋은 봄나물입니다. 그리고 미나리는 부인병과 음주 뒤 두통과 구토에도 효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 B와 비타민 A, C, 미네랄이 풍부해 간 기능을 개선하는데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또한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 몸 안에서 나트륨 작용을 억제하여 수분과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신장 기능을 강화시켜 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나리는 좋은 약재로 쓰이며 특히 봄에 미나리를 많이 먹으면 좋다는 것은 저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대장염과 설사증에 걸리면 미나리를 많이 먹고 또 간염과 부인병을 예방하는 민간요법으로 미나리를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반찬거리로도 많이 먹습니다.
봄에 겨울 김장이 떨어지면 미나리와 시금치를 많이 먹는데 평양에서는 집집마다 텃밭이 없다 보니 남새 상점에서 공급해 주는 채소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저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평양시 근처인 역포구역과 락랑 구역 주변으로 미나리를 뜯으러 가곤 했습니다.
미나리를 끓는 물에 삶아 하루 이틀 말려 선선하게 건조해두었다가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대장염 예방을 위해 반찬을 해먹었습니다. 그리고 부인병과 간염 예방을 위해 말린 미나리를 달여 먹기도 했습니다. 모든 약품이 부족한 북한 사회에서 저는 민간요법으로 또는 반찬으로 미나리를 많이 먹었습니다. 초봄에는 미나리를 뿌리째 볶아 먹어도 맛있는 별미음식이었으며 물김치를 만들어 먹어도 좋고 미나리 전을 부쳐 먹거나 해물 탕, 꽁치 조림, 청어 조림에 넣어도 알레르기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나리를 뜯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3시가 됐습니다. 그새 미나리는 큰 마대자루 하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손녀는 배가 고프다고 졸랐습니다. 그제야 저는 가족과 함께 장외리 근처에 있는 오리 마을이라는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리 훈제와 오리 전골을 시켰습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으나 점심에 서울막걸리를 한 잔씩 곁들였습니다. 근처 마트에서 가위를 구입한 딸들은 다시 미나리를 뜯으러 진펄에 들어갔습니다. 벌판에서 미나리를 뜯느라 헤덤비는 딸들 모습은 아기엄마가 아니라 마치 어린 소녀 같았습니다.
금방 밥을 먹고 잠이 든 손녀와 손자를 차에 두고 저도 함께 미나리를 뜯었습니다. 잠깐 사이었지만 우리는 미나리를 퍽 많이 뜯었습니다. 제가 뜯은 미나리는 두 딸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시부모님 댁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작은 딸에게는 조금 더 주었습니다.
결국 오늘의 목적지인 제부도는 가지 못했지만 미나리를 뜯고, 벌판의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돌아오는 내내 즐거워하는 딸들의 모습을 보니 저의 마음 역시 행복하고 뿌듯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식구들이 밥을 먹는 동안 뜯어온 미나리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삶은 조개와 함께 데친 뒤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쳤습니다. 온 방 안에 그야말로 미나리 향이 안겨 왔습니다.
삶은 미나리를 두 몫으로 나누어 딸들에게 나눠주고 집에 가면 바로 그늘에 말리도록 당부했습니다. 이번 주말, 건강에도 좋고 반찬거리로도 고급인 미나리를 뜯으며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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