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할머니들이 다 그러하듯이 저는 요즘 손자 녀석들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생인 손녀에게 땅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고 저는 지난 주말 직접 밭을 다녀왔습니다. 작은 꼬맹이에게 뭔 땅인가 매우 궁금하시죠? 처음엔 저도 잘 믿어지지가 않았기도 했지만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추첨에 당첨이 되어 방 한 칸만 한 땅을 배정 받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무슨 땅을 추첨 받았는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참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여 지난 주말 전철을 타고 달려갔거든요. 사실 저는 학교 텃밭이라 하여 학교 정문 안에 있는 작은 꽃밭으로, 아니면 학교 옥상에 있는 아주 작은 규모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텃밭은 학교 정문을 벗어나 도로를 건너 넓은 벌판에 여러 몫으로 분배되어 있었는데 정말 시연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말뚝이 박혀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학년마다 또는 학급마다 추첨에 당첨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미리 도착해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마다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꼬맹이들이 작은 고사리 손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옹기종기 호미를 들고 땅을 일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 꼬맹이들이 너무도 기특합니다. 제 손녀도 차에서 호미를 들고 달려가 친구들을 보며 반가워 인사를 합니다. 제법 팔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호미를 들고 열심히 손놀림을 하는 모습이 제법이었습니다. 저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흔들어 보이며 "내 손녀 땅 부자네" 했습니다.
손녀 애는 추첨에서 당첨된 얘기를 다시 한번 신나게 쫑알쫑알 자랑을 합니다. 손녀는 호미로 저는 삽으로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참 좋은 땅이었습니다. 어느새 손녀의 얼굴과 제 얼굴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줄줄이 흘러 내렸습니다. 빠른 동작으로 삽을 놀리는 제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는 몇몇 학부모들이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그 칭찬이 싫지가 않았습니다만 아직은 솜씨가 살아 있다는 생각으로 뿌듯했습니다.
9살짜리 손녀와 딸 등 세 모녀가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방울토마토와 가지, 고추와 상추 그리고 고구마도 심었습니다. 마치 제 땅이라 주인 행세를 하는 개구쟁이 꼬마 손녀애가 기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물도랑이 조금 멀었지만 작은 물통으로 부지런히 물도 길어 옵니다.
종자 모를 다 심은 저는 손녀와 짝꿍 아이의 학부모의 일손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점심은 자장면을 배달해 텃밭에서 먹었습니다. 벌판이라 바람은 조금 세게 불었지만 즐거운 노동 뒤 끝에 그리고 또 여러 명의 학부모들과 함께 먹는 자장면 맛도 공기도 좋았지만 별 맛이었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얼굴에 흙먼지 지도를 그린 상태에서 자장면을 먹는 우리 꼬마들의 환한 모습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꼬마들에게 새 희망과 꿈을 안겨 주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 꼬마들이 나라의 자연과 대지를 더욱 열심히 사랑하게 될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또 다시 지나간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제 고향 평양의 집 앞에는 작은 꽃밭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집집마다 그 꽃밭에 꽃을 심도록 요구합니다. 때로는 꽃씨가 부족해 심지 못하고 곷 대신 고추 상추를 심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저는 그 해에도 그 작은 꽃밭에 호박을 심었습니다. 어느새 호박은 자라 지붕으로 뻗어 올라갔습니다. 한창 자라나는 호박순 한 개를 뜯어 손에 들고 된장찌개를 끓여 달라고 하던 5살짜리 아들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처럼 지나갔습니다. 또 어느 해인가는 아들이 엄마인 나도 올라 갈 수 없는 지붕위에 올라가 제 머리 보다도 큰 호박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지붕위에서 좋아라 춤을 추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지나간 추억에 잠겨 있는데 손녀의 담임선생님이 나와 인사를 합니다. 저는 담임선생님의 두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습니다. 시연이가 할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저는 어깨가 조금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학생들은 지금 이때 모내기 전투에 한창 동원되고 있습니다. 지도 농민의 감시를 피해 개구쟁이 모습으로 일은 하지 않고 허허벌판에서 장난을 치다가 지도농민의 회초리에 종아리를 맞아 눈에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힘에 부쳐 옥수수 영양단지 하던 도중에 쓰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한의 우리 아이들은 작은 텃밭을 통해 자연의 힘으로 새 생명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어린이들은 당국의 강제에 못 이겨 모내기와 옥수수 영양단지 심기와 김매기 물주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도 비교가 되었습니다.
각종 디지털 매체에 길들여져 손전화기로 또는 텔레비전으로 게임이나 만화 영화를 보는 한국의 우리 아이들에게 그 어떤 수업보다도 텃밭을 통해 자연과 함께 이어주는 활동은 많은 행복감과 성취감을 안겨 주는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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