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영상 테마 파크 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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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KBS에서 제작 중인 '백두산'이라는 다큐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에 있는 합천 영상 테마 파크 촬영장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가는 친구들은 여자 6명, 남자 4명으로 모두 10명이었습니다. 여의도 전철역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는 6시 50분까지 모두 모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6시를 알렸습니다. 친구들은 강서구와 양천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손전화기로 출발하자는 문자를 보내고는 양천구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강서구에서 한 명이 오기로 했다가 갑자기 두 명이 오는 바람에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남자 4명 중 한 명이 개인사정으로 오지 못한다는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방송국 피디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피디는 괜찮으니 그냥 인원이 되는 대로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발해 목적지까지 가는 6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운전기사가 우리에게 한국이 걸어온 역사와 오늘날 세계강국으로 발전하게 된 모습에 대해 알려 주었고 또 운전하며 각 지방의 시내와 마을을 다니면서 본 지방의 특산물과 지방 특별 음식 종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가 탄 버스가 합천군 시내 입구에 들어설 무렵, 차 안에 난데없이 딸기의 단향이 날아들었습니다. 모두 창문을 열고 보니 사방에는 온통 딸기를 재배하는 하우스들이 있고 길거리에는 딸기를 파는 가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차가 조금 막혔지만, 그렇게 창 밖 구경을 하며 6시간이 지나 목적지인 경상남도 합천 영화 촬영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쁘게 점심을 먹고 난 뒤 저는 촬영장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제중원' 드라마에서 본 낯익은 한성 병원건물과 전우영화에서 본 옛날 거리들, 건물들도 보았고 땅크와 장갑차 그리고 옛날의 기차역들과 열차도 감회 깊게 보았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합천 영화 촬영장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을 비롯해 외국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우리는 곧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남자들은 북한 군인들이 갓 해방되어 입었던 군복을 입었고 여자들은 흰 상복을 입었습니다. 죽은 김정숙을 넣은 관에 붉은 천을 씌워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어깨에 메고 여자들은 김정숙의 초상화와 꽃묶음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두 장면을 찍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KBS 감독과 피디들 그리고 현장 직원들과 함께 북한의 당 생활을 총화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다시 차를 타고 약 40분 되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오래전에 이미 폐허가 된 공장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척 봐도 북한 강선제강소 현장 같았습니다. 하루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당 생활 총화 하는 모습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노동자복차림으로 다시 옷을 갈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당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제가 마침 당 세포 비서로 선출됐습니다. 당 유일사상의 10대 원칙과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해 자기 당 생활 총화를 한 뒤 같은 동료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실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지루함과 배고픔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호상 비판이었습니다. 서로 호상 비판을 하는 것이 이미 우리끼리 짜고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제가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벌겋게 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세포비서 역을 맡은 저는 마주 앉아있는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당 생활의 옛 추억을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되는 당 생활 총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지긋지긋했던 조직 생활이었습니다. 때로는 자아 비판거리를 만드느라 의식적으로 한 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학습과 강연회에 빠지고는 당 생활 총회에서 내 자체 자아비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함을 만드느라 의식적으로 빠졌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때의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비판을 받으면 두고 보자는 식으로 앙심을 품고 있다가 돌아오는 생활 총화에서 자기를 비판했던 친구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난날의 9살, 소년단 넥타이를 목에 두른 날부터 조직 생활을 시작해 죽을 때까지 남을 의심하고 남을 비판하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순간 친구들의 어설픈 모습에서 지난날의 나 자신의 모습을 새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니 쓴웃음만 났습니다.

밤 10시 50분이 되어서야 촬영을 마쳤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밤 12시가 되어서야 휴게소에 들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휴게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늦은 저녁 식사 역시 즐거운 추억이 됐습니다. 서울로 오는 동안 지쳐서 코를 골며 자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평양에서 많은 행사에 참여하며 배우들을 보면 부러운 눈길로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대한민국에 와서도 이름 있는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을 만나 싸인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배우들을 다시 보게 됐고 너무도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배우들이 그 한 장면을 위해 너무도 많은 땀을 흘려야 하고, 한 동작을 위해 얼마나 힘든 로고가 깃들어 있는가에 대해 다는 몰라도 100분의 1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도 월급과 식량공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북한 사회에서 당원이 무단결근했다는 죄 아닌 죄, 굶어 죽지 않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나가 장사했다는 죄 아닌 죄로 당증을 뺏기고 평안남도 증산군에 있는 11호 로동 교양소에 가서 목숨을 잃은 남편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고 쓰립니다.